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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22. 18:51 - MOZONG

[TOS/스폰즈] 외계인과 함께 춤을



* 81번까지 연애하고 마인드멜드 한 그 애들






노래를 부른다. 가사가 없었기에 음계를 짚는 것에 가까웠지만, 리듬이 존재하고 마디의 행진이 시적이었으므로 마땅히 노래를 부른다고 서술한다.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음역대는 의식 속에 있을 때 보다 넓어졌고 음계 역시 깨끗하게 그려졌다. 그의 의식이 즐겁게 다음 화성을 찾았다.


스팍은 새로운 노트를 쓰고 있는 중이다. 놀랐는가? 그에게도 긍정적인 감정을 발산하는 취미생활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미 함선 내 알려진 출중한 연주실력과 그에 못지않은 작곡솜씨는 그의 즐거움이 닦은 결과들 중 일부분에 불과했다. 신년회가 있었다. 스팍은 단어의 모호성에 대해 건의하고 싶었으나 다수의 행복과 해당 언어를 정의하는 일의 불필요성을 납득하여 입을 다물었다. 우주력으로 해가 바뀔 때 함선에서는 최소한의 인원만을 배치한 채 짧은 시간동안 연회를 즐겼다. 정당하지만 합리적이지 않은 절차― 무작위 추첨에 따라 [근무] 팻말을 달게 된 이들을 제외한 알파 베타 감마 시프트의 모든 인원이 한데 모이는 유일한 행사였다. 스팍은 함선의 모두가 얼굴을 알고 있는 부함장이었으므로 직책에 따른 레크레이션 의무를 지닌다는 커크의 반협박적 제안에 첫 회부터 연주자로 나섰다.


문제가 생겼다. 다양한 종족이 군상을 이룬 엔터프라이즈의 대원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음계와 박자를 가지고 있었다. 심심찮게 불평이 쏟아졌다. 가파른 눈치싸움을 치룬 첫 연회가 끝나자 스팍은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지구의 오선음계를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 모두가 자유롭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순간까지도 규칙으로 매듭지어야겠냐는 맥코이의 늘 그런 반대의견이 있었으나 정말이지 모르고 하는 말이었다. 성숙한 의식을 지닌 대원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과 태도를 업무면에서 보여주었다. 그랬기에 그들에겐 강도높은 업무로 얻은 스트레스를 풀 곳이 필요했다. 공식적으로 휴식의 장을 만들어 주자 물 밑의 암투는 아주 치졸하게 전개되었다. 악보가 사라졌다. 악기의 조율이 날마다 엉망진창으로 변했다. 너무나도 사소한 나머지 건의할 수 없었으며 건의하지 못했기에 공론화되지도 못한 사건들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레크레이션 룸에서 노래를 부르고 악기 좀 만진다 했던 모든 이가 유치한 전쟁을 겪었다. 캡틴을 제외한 다른 대원들은 알고 싶어도 모를 수 밖에 없는 전쟁이 스팍의 공언으로 일단락된 것이다. 연회에서 음계를 다루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스팍의 규칙에 동의했다. 지친 그들의 업무 효율도가 눈에 띄게 낮아지기 직전의 일이었다.


해서 그들에겐 공식적인 연회 순서가 생겼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데는 확실히 규칙이 필요했다. 시간을 따져 곡 수를 정했다. 엄격한 심사―기준은 인기였다―를 거쳐 연주될 기성곡을 정했다. 뿐만 아니라 탐사 스트레스를 창작욕으로 푸는 이들에게 펜대를 넘겼다. 올해는 스팍의 차례였다. 스팍은 벌칸의 음계로 시작하는 3부짜리 왈츠를 기보했다. 머릿속에 떠올린 음계를 따라가는 것은 쉬웠다. 이미 두 번의 연회를 거쳤기에 자연히 분위기를 예상할 수 있었다. 높고 낮은 현악기 선율이 귓가에 맴돌았다.



[위이잉―]


흐르던 현악기 선율보다 정확히 한 노트 더 높은 내선통신 소리가 울렸다. 안고 있던 벌칸식 류트(ka'athyra)를 내려놓은 스팍이 버튼을 눌렀다.


[미스터 스팍!]

"닥터 맥코이."

[자네 지금 바쁜가?]

"당신보단 한가합니다."


맥코이의 등 뒤로 어수선한 메디컬 베이의 풍광이 들어왔다. 이 순간에도 간호사와 환자 세 명이 화면 끝에서 튀어나와 끝으로 사라진다. 스팍은 허리를 세우고 상체를 내밀었다. 화면 면적을 채우고자하는 의도였으나 맥코이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자네 검진 시간이 지금이 아니란 건 아네만,]


선생님. 채플의 목소리가 화면 밖에서 들렸다. 맥코이의 시선이 우측 상단으로 향한다. 시선이 머문 곳으로 손가락을 들어보인 맥코이가 다시 스팍을 향해 말했다.


[괜찮다면 지금 와서 받는 게 어떻겠나? 스케줄이 꼬이는 바람에 침대가 비었어.]

"그것 참 비전문적인 운영이군요."

가감없는 평가에 맥코이의 얼굴이 삼 분의 일만큼 쪼그라들었다.

[아, 올건가 말건가!]

"곧 가도록 하겠습니다."

인정머리없는 뾰족귀같으니라고. 중얼거리는 소리에 당장 반격할 준비를 마친 스팍이 입을 열기도 전이었다.

[맥코이 아웃]


화면 속의 맥코이가 사라진다. 입술 끝이 슬쩍 내려갔다가 원위치로 올라온다. 어쨌든 스팍은 오프 시프트로 여가를 즐기는 중이었고 닥터 맥코이는 아주 바빴기에 그의 제안에 응하는 건 옳은 일이었다. 류트의 활을 살짝 풀고, 거치대에 올린 다음 쿼터를 나설 준비를 한다. 그러니까, 쿼터를 나설 '준비'를 했다. 검은 반소매 활동복에 활을 청소할 때 쓴 분진이 묻지 않았는지 살폈다. 색상표를 떠올리며 턱 아래가 근처 피부색과 얼마나 다른지도 대조해본다. 모든 부분을 만족할 때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스팍이 쿼터를 나섰다.




메디컬 베이가 있는 연결통로를 지나자마자 인구밀도가 높아진다. 주로 보이는 인영들이 섹션C에 있는 지휘부 산하 대원들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들이 오늘 오전 연방으로부터 새로운 서바이벌 프로그램 모델을 받은 것을 안다. 그들은 모델을 확인하고, 확인서를 캡틴에게 제출한 다음 최종적으로 [우리 함선의 지휘부 산하 모든 대원들은 모델을 확인하였으며, 다른 부서에게 교육이 가능한 수준까지 이해했음] 결재를 마쳐야 한다. 메디컬 베이의 스케줄 에러는 아마 여기서 기인했을 것이다. 생각은 우주 한가운데서 제어 장치를 잃은 함선처럼 뻗어나갔으므로, 스팍은 자연히 다음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검진 순서는 크게 지휘부, 기술부, 과학부 순으로 따른다. 몇 년 전만해도 과학부가 두번째였으나 의료부가 과학부로 들어오며 편의상 순서가 바뀌었다. 그렇다면 아직 지휘부가 대다수인 순번에서 왜 과학부인 본인을 불렀는가? 문득 스팍은, 맥코이가 음성 통신으로 전달 가능한 사안을 '굳이' 화면 통신으로 전달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뒷짐진 손에 슬몃 힘이 들어간다. 손가락 마디가 쿼터에서 생각하던 음계의 리듬을 따라 굽이쳤다.


메디컬 베이에 도착한 그는 본능적으로 닥터 맥코이를 찾았다. 함선의 크기에 비해 그다지 넓지 않은―언젠가 닥터 맥코이는 이것에 대해 불평했다―의무실이 제법 복작였다. 그러나 금방 찾아낸다. 맥코이는 의무실 입구와 멀리 떨어진 침대에서 정기 검진자가 아닌 내원자에게 무언가를 알려주고 있었다. 간호사가 스팍을 불렀다. 안내에 따라 기본 검진을 받았다. 골수와 뇌척수액 채취는 여전히 까다로운 과정이었기에 닥터 음벵가에게 인도되었다. 내심 맥코이에게 검진을 받을거라 생각했던 스팍은 멀찍이 서 있는 음벵가를 보고 나서야 본인의 생각이 얼마나 논리와 방위를 달리 했는지 깨달았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닥터 음벵가가 자리를 비웠다. 와중에도 메디컬 베이의 문은 빠르게 개폐되길 반복했다. 대원들이 드나들었다. 스팍의 다음 순서로 체콥이 나타났다.

"미스터 스팍!"

"미스터 체콥."

가볍게 인사를 하는 동안 멀찍이 선 맥코이가 돌아선다. 짧게 시선이 마주쳤다. 그가 뒷짐을 진 채 눈으로 인사를 건넸다. 따스하고 명백하다. 두 사람이 마주하는 시야 사이에 적지 않은 인원이 오갔다. 스팍은 선택적으로, 그들을 가시영역에서 삭제한다. 꼭 맥코이가 입을 벌려 자신의 이름을 부를지도 모른다는 근거불능의 추측에 휩싸인다. 그러나 예민한 청각이 맥코이의 이름을 듣는다. 갑작스럽게 분주한 소리가 중첩되고, 걸음을 옮기는 그의 시선이 패드 화면에 고정된다.

"이번에도 연주만 하십니까?"

불쑥 집중을 흐트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신년회에서 말임다."

체콥의 질문에 스팍은 답변보다 시간을 먼저 계산했다. 체콥과는 한참전에 인사를 나눈 것 같았는데. 초 단위의 시간을 도둑맞은 것만 같다.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다니요?!" 과장스럽게 펄쩍 뛴 체콥의 눈이 커졌다. 입술이 살짝 올라간 것도 같다. "부함장님께서 다른 활동을 생각하고 계시다고 여겨도 되는 겁니까?"

체콥의 즐거움이 무엇때문인지 모를 노릇이다. 스팍이 고개를 비스듬히 굽혔다. "아직 연주에 대한 확신도 하지 못했다는 의미였습니다, 미스터 체콥." 스팍은 자신의 말이 너무 강건하거나, 변명처럼 들리지 않는지 곱씹으며 체콥의 얼굴을 살폈다. "에, 저는 또, 올해는 부함장님이 춤추시는 모습을 볼 수 있나 했지요." 나는 춤을 추지 않습니다. 관성적인 대답을 하기도 전에 간호사가 체콥의 이름을 불렀다. "뭐, 부함장님의 연주는 언제나 호응이 좋으니 그만두겠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음흉한 눈빛으로 고개까지 흔든 그가 재차 부르는 간호사의 목소리를 따라 멀찍이 사라졌다.    



제어하기 어려운 감정에 대해선 맥코이와 함께 얘기했다. 맥코이는 얼굴을 붉혔다가도 팔짱을 끼고 눈을 내리깐 채 환자를 문진하듯 질문했고, 또 지구의 여러 ―비논리적인 것처럼 들리는―이야기를 가져와 읊어주기도 했다. 맥코이는 의사이고 연인이었지만, 동시에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심리학자임이 분명했다. 그의 말 대부분에 동의할 수 없었으나 이해를 통한 참조를 하는데는 제법 많은 도움이 되었다.


"맥박이 평소보다 빠른데요, 미스터 스팍."  


척추를 짚고 있던 음벵가가 말했다. 긴장하지 마십시오. 스팍이 긴장했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의사의 관성인지 친절한 말을 건넨 음벵가의 손이 꼬리뼈 위 척추와 척추 사이를 꾹 눌렀다. 그곳에 제법 두께있는 바늘이 들어올 것이다. 예상하면서도, 한편으론 당황했다. 맥박이 빠르다니. 맥코이를 생각했기 때문에? 길쭉한 철심이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게 느껴진다. 직전의 마취로 통증은 없고 감각만 있다. 그러나 몸이 꿰뚫리는 기분은 언제고 불편하다. 아, 맥코이의 손이었더라면 이 불쾌감이 줄어들었을까. 순간 조절하지 못한 의식에 맥코이의 이름이 떠오르는 순간 맥박이 빨라졌다. 목께가 달아오르는게 느껴진다. 급하게 호흡을 조절하며 눈을 감는다. 스팍이 감당할 수 있는 감정의 극대치였다.


최근 스팍은 맥코이의 의식과 함께 그의 모든 삶을 공유한 마인드멜드 이후 전례없는 충족감을 어떻게 습득해야할 지 몰라 방황했다. 통상 치루던 명상은 도움이 되질 않았다. 명상은 얕은 의식 속으로 들어가 사실을 확인하고 그에 따른 감정을 다스리는 과정을 거쳤는데, 우선적으로 스팍은 '나의 방식으로 그와 교류했다'는 사실 외의 진술을 할 수 없었다. 놀라웠던 그들의 여행은 단 한 문장으로 끝이 났고, 한 문장에서 느낄 수 있는 상상 이상의 감정은 다스리도록 교육받은 것이 아니었다. 성취감, 충만함, 생애의 활력, 모든 배타적인 것으로부터의 안전. 그것들은 모조리 호흡하는 생명체로서 마땅히 지녀야 하는 논리적인 동력들이었다. 다만 한량이 없을 뿐. 스팍은 맥코이로서 존재하는 모든 것에 만족했다. 그의 어깨가 둥글다는 것과 살짝 튀어나온 뒤통수와 마디가 굵어진 손가락―손가락을 생각하면 호흡이 흐트러졌다. 머릿속에 떠오른 특정한 몇 장면을 황급히 지운다―, 뿐만 아니라 그가 하는 생각과 그가 내뱉는 말―종 차별적인 언사는 말고!―, 그와 나눈 수 많은 대화들. 그 모든 것들이 스팍의 의식 속에 크게 자리잡아 더할나위없는 만족감을 주었다. 어떤 것도 부족함이 없었다. 필경 허리를 숙여야만 확인할 수 있는 함교의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며 터보리프트가 열릴 때마다 귀를 쫑긋 세우고 기대하는 자신을 발견한 순간, 스팍은 인정해야만 했다. 그저 지금을 받아들이기로! 다만 이러한 측량 이상의 감정에 도움이 되었던 일은 마인드멜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함선 전체 정기 검진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맥코이의 모습은 함교에서조차 쉽사리 볼 수 없었다. 스팍은 거리를 통해 관계의 변환점을 잘 조절해나갔다. 물론 맥코이와는 항상 함께 있는 것 같았다.

다만 그는 한가지 생각에 골몰했다. 체콥에게 '나는 춤을 추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지만 맥코이의 언어를 빌려와 표현하자면 '꼼수를 부린 것'에 불과하다. 벌칸에서도 춤을 춘다. 오히려 지구상에 현존하는 종류보다 더 다양한 유형의 춤이 존재할 것이라 스팍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물론 차이는 있었다. 벌칸에서는 정신수련과도 연결되는 독무가 극도로 발달했다. 지구와 달리 관계를 지칭하는 언어조차 제한된 문화는 파트너쉽이 필요한 춤에 그들의 여가를 할애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에게 손은 중요한 신체부위였기에 손을 맞잡고 호흡을 맞추는 지구식 무용은 사랑받을래야 사랑받을 수 없었다. 스팍은 지구에서 학습하며 그들이 여는 다양한 축제를 봐 왔다. 대기를 수놓는 불꽃은 논리적이진 않았지만 아름다웠다. 그들의 음악은 편차가 컸지만 대개 논리적이고 흥미로웠다. 정신을 다스리는데 큰 의의가 있던 춤은 지구에서 감정을 발산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군중 속에서 마주하고 있는 맥코이와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의 손과 맞닿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렇다. 스팍은 맥코이와 함께 춤을 추고 싶었다! 욕망이 어찌나 컸던지 체콥이 사용한 '춤'이란 단어만으로도 허겁지겁 도망갈 구석을 찾을 정도였으니 사안이 제법 심각하다 말할 수 있겠다. 스팍은 공표하고 싶었다. 섣부른 확신이 아니라, 보고 자란 응당한 순서로 그래야만 했다.

 






"거절하네."


벌칸이 언제 분노하는지 아는가? 아직 유아본드조차 맺지 않은 조무래기가 와서 '느이 아빠는 배신자' 운운할 때? '뾰족귀 홉고블린'이라며 지구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차별언사를 향후 5년 간 항해할 함선에 탑승해서 들었을 때? 자격 미달인 타 함선 대령이 함교로 들어와 '엔터프라이즈는 나의 것'이라고 외쳤을 때? 아니다. 스팍은 이 모든 순간을 논리적으로 침착하게 대응했다. 하지만 마땅히 기대했던 연인의 입술에서 이해할 수 없는 거절이 나오는 순간은 저도 모르게 옆구리가 움찔하고 발가락이 굽고 마는 것이다.

"왜 입니까?"

너무 흥분한 나머지 목소리가 뒤집어졌다. 스팍은 잠시 목을 가다듬었다. 아직도 뺨이 불그스름한 맥코이가 가볍게―가볍게!―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춤이라니, 스팍! 자네 그 벌칸 뇌가 어떻게 된 게 아닌가?"

마치 정해진 순서처럼 입을 닫은 스팍이 비난의 눈초리를 보냈다. '이크'하는 표정으로 스팍의 눈치를 살피던 맥코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들은 '두 사람이 쿼터에 함께 있는 상황' 한정으로 종 차별적인 언어에 대한 엄격한 규칙을 제정한 바 있었다. (맥코이는 코웃음을 치며 '도장을 찍으려거든 내 손가락을 자르게!'라고 말했는데 스팍이 '그럼 엄지손가락으로 하시겠습니까?' 묻는 순간 목침이 날아오는 바람에 마지막이 흐지부지하게 되긴 했다. 스팍은 여전히 '내 손가락을 자르게!'의 함의를 알지 못했다. 손가락 정도는 유전자 정보만 있으면 몇 시간 만에 다시 재생시킬 수 있지 않은가.)

"큼. 버릇이 돼서 그래. 하지만 너무 허황된 얘기라."

"당신과 나는 '춤'이라는 개념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표현할 수 있는 신체기관 역시 존재하며 곧 춤을 출 수 있는 연회가 열립니다. 어느 부분이 허황되었다는 얘긴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춤을 춘다는 그 자체가 허황되었다고. 스팍. 벌칸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벌칸에서도 춤을 춥니다." 스팍은 재빨리 말했다.  

"그래, 그러니까 자네가 나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거겠지. 하지만 스팍. 나는 춤을 추지 않아. 내가 춤이랑 가까워 보이긴 하는가?"

가슴을 활짝 젖히고 양 팔을 들어보인 맥코이가 스팍의 의문이 가득한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나는 '춤을 추지 않는 유형'의 사람이네."

"하지만."

"이 재미없는 논의를 계속할텐가? 그렇다면 난 내 쿼터로 돌아가겠어."


검지와 엄지를 차례대로 내보이며 맥코이가 경고했다. 그의 눈이 사뭇 진지했기에 스팍은 그러마 하고 숙일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이제 고작 옷을 벗은 참이었다! 한시가 아쉬웠기에 분위기는 전과 같이 부드럽게 이어졌으나 깍지를 끼는 순간에도 스팍은 집중할 수 없었다. 감정적인 닥터가 왜 그런 친밀하고 즐거운 수단을 거절하는지 모를 일이다.





*





날개를 가진 인류형이 토착종인 행성 나르고스에 이르렀을 때 엔터프라이즈는 전반적으로 들떠있었다. 코 앞에 신년 행사가 계획중이었고, 그보다 더 이르게 랜딩 미션이 그들을 기다렸다. 그렇다 랜딩 미션! 랜딩 미션이라고는 하나, 오래전부터 연방과 교류를 해오던 행성이었다. 필요한 물품을 싣고 내리는 일 외에 의료부에서 해당 행성에 거주중인 연방 소속 연구원들의 검진을 맡는 것이 전부였으므로 즐길 시간은 충분했다. 엔터프라이즈가 나르고스의 궤도에 안정적으로 돌입했다는 함내 통신이 울리자 분위기는 더더욱 고조되어서, 복도를 오가는 모두의 걸음걸이가 가벼워지는 바람에 기술부 대원인 제임스는 '그만 중력장치가 고장난 줄 알았지 뭐야!' 과장스레 웃으며 같은 농담을 일곱번이나 하고 말았다. 물론 그의 친절하지만 날카로운 동료들은 '이봐, 제임스. 네가 기다렸다는 듯이 재미없는 농담을 할 때마다 우린 네 이름이 제임스 코왈스키가 아니라 제임스 커크라고 주문을 걸곤 해.'라는 방패로 제임스의 농담을 절하시켰으나 대체로 흥겨운 분위기였기에 그러한 비판 또한 금세 휩쓸려 사라졌다.  

대원들의 분위기는 함교로도 이어져 장교들 역시 만연 웃음꽃을 피운 채 그들의 시프트를 채웠다. 장교들에겐 또 다른 임무가 있었다. 예의를 갖춰 나르고스의 접대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나르고스에서는 통치자 교체가 이뤄지고 있었기에 그들과 연방이 여전히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갈 것이라는 확언이 필요했다. 국왕의 새로운 계승자가 정해졌다. 예외적인 사고가 벌어지지 않는 한 그들은 다음 삼백 년간 한 지도자를 따라 행성을 보살핀다. 계승식에 이은 안식년이었기에 하선하기 전 모든 장교가 예복을 갖춰 입었다. 스팍이 벌칸식 검은 로브를 두른 이유도 그에 따른 것이었다.

"자넨 별로 즐거워보이지 않는군."

오랜만에 보는 연인의 새로운 모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빠르게 훑은 맥코이가 말했다. 며칠전만 해도 저런 표정이 아니었는데. 문득 그 날 밤 저 불퉁한 얼굴에 이를 세워 험하게 굴었다가 떠밀린 어깨의 촉감이 떠오른다. 이런. 자연히 고개를 떨구고 부츠 앞축으로 바닥을 찬다. 피가 몰리는 것 같아 반사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나르고스의 예술은 형태에 따른 감탄만을 자아낼 뿐, 높은 수준의 것이 아닙니다. 육식을 즐겨하는 습성 또한 저와는 맞지 않는군요."

상대가 맥코이였기에 스팍은 진실되게 대답했다. 미스터 스콧이나 미스터 술루가 질문해왔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종류의 답변이었다. 스팍의 불평에 수 초간 떠올랐던 음흉한 생각이 순식간에 사라진 맥코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짐짓 가슴을 내밀었다. 선의로서 한마디가 필요하군. 금빛 띠를 세로로 길게 박은 그의 함선 예복이 번쩍였다.

"자넨 지난번 지상휴가 때도 함선에서 내리지 않았잖나. 잠깐이라도 '진짜' 대기를 마시면서 즐기라고. 분명 자네의 벌칸 심리에도 도움이 될걸세."


착륙은 순조로웠다. 나르고스는 모든 대원이 즐기기에 충분히 넓고, 탄탄한 문화적 기반으로 쌓아올린 유희거리 또한 다양했다. 함선에 남겠다고 자처한 인원을 제외하고 소그룹을 짠 대원들이 차례대로 행성에 내려왔다. 실어야 할 화물이 있었기에 후발대와 함께 내려온 커크가 기다리고 있던 국왕과 조우했다. 친위대가 따라 붙었지만 환영단이 동행해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안내를 원하는 국왕의 손짓에 커크가 양해를 구했다. 아직 그의 일등 항해사와 선의가 내려오지 않은 탓이다. 그들은 야외에 머물며 얼마간 나르고스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 닥터 맥코이."


스팍이 내려오고 나서도 두 팀이 더 나타난 다음에야 맥코이가 그의 의료진과 함께 내려왔다. 커크의 소개가 있기도 전 국왕은 반갑게 맥코이를 불렀다. '우리 의사선생에게 친구가 있는 모양이군!' 익살맞은 얼굴의 커크가 스팍을 돌아보았다.


"지구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 나를 도와주었다네."


맥코이는 익숙하게 그들의 정중한 인사법―양 팔을 가슴 앞에 교차했다―에 따라 인사했다. '정말이지 근래들어 최고의 임무로군!' 늘 확실하지 않은 문화의 위험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던 맥코이였기에 그가 보이는 호의는 커크에게 청신호로 다가왔다. 


"의사로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들은 걸어서 국왕의 거주지로 향했다. 군데군데 나무와 수풀이 우거지고 강물이 흘렀다. 교각은 장애를 지닌 나르고스인들을 위한 시설이라고 국왕이 설명했다. 장교들이 교각을 건너는 동안 국왕과 친위대는 앞서 날아가 다리의 끝에서 그들을 기다렸다. 국왕을 본 시민들이 오른쪽 날개를 접었다 폈다. 그들의 예의였다. 그들이 지나치는 건물들은 하나같이 끝이 뾰족하고 면적에 비해 높았다. 건축 양식에 흥미를 느낀 스팍의 낌새를 알아챈 환영단 중 하나가 건물 내부에 들어가면 충분한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을거라고 알려주었다.

원하는 만큼 풍경을 즐겼을 때쯤 국왕의 거주지에 도착한 그들은 적당히 형식적이고 심혈을 기울인 게 역력한 환영사를 들었다. 가벼운 식사 역시 겸했는데, 엔터프라이즈의 부함장이 벌칸인 것을 사전에 확인한 나르고스인들은 다양한 종류의 과일과 샐러드 또한 내놓았다.  

"이런 즐거움이라면 곧 있을 함선 연회가 필요없을 정도겠어."

"그랬다간 대원들의 사기가 높은 확률로 저하될 것입니다, 캡틴.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사뭇 진지한 소리에 기가 죽은 커크가 목소리를 낮췄다.  


"그냥 해 본 소리야, 스팍."

"저도 그냥 해 본 소립니다, 캡틴."  

"오! 본즈. 방금 들었나? 우리 일등 항해사께서 드디어 농담을 했다네! 오늘을 기록해 둘 필요가 있겠어."

"저도 농담의 기능을 알고있습니다. 다만 부적절하게 사용되길 바라지 않을 뿐이죠."

스팍에게 한방맞은 커크가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맥코이가 덩달아 기분좋게 웃었다. 스팍 역시 나르고스인들의 극진한 대접에 뾰족하게 굴던 것을 그만두기로 한 모양이었다.


아무리 즐거워도 나태해지면 안 될 일이지. 맥코이는 나르고스에 거주하는 연방 소속 인원 모두를 검진하는 임무를 맡았다. 짤막한 인사를 나눈 뒤 환영단의 안내를 받아 그들의 진료소로 향했다. 도착한 진료소 건물 역시 아주 높았다. 높은 만큼 널따란 창으로 햇살이 쏟아졌다. 그들이 건물을 높이 쌓는 이유는 날개 때문이라고 금방 답을 내렸으나 좁은 면적에 대해서는 근거를 찾지 못했는데, 이 때문인 것 같았다. 자연! 자연을 최대한 느끼기 위해. 꼭 마법같군. 누군가 들었으면 분명 항변했을 감탄을 하며 진료실에 들어선 맥코이가 다시 한 번 가슴 위로 팔을 교차해 인사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닥터 맥코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닥터…"

"플리린."

"닥터 플리린. 내 대원들이 밖에서 준비중입니다. 진료실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줘서 고마워요."

"우리는 행성연합과 좋은 관계를 맺고자 합니다. 당연한 일인걸요."

"여긴 정말 아름답군요."

"그렇게 느낀다니 다행입니다."

"느낀다고요?"

"뭐… 늘 같은 풍경에, 병원에만 있으면 또…"

"아, 알죠. 잘 압니다. 늘 유쾌할 순 없으니까요."

맥코이가 가볍게 웃었다. 그에게 몇 가지 전달사항을 알려준 플리린이 '그럼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명백한 지구식 인사를 건네고 사라졌다. 고개를 꺾어 높이 솟은 천장을 올려다본다. 구체로 엮은 깃털장식이 살랑였다.




환영단이 물러가자 정복을 걸친 위원회가 꾸려졌다. 그들은 천장이 높은 방에 둘러 앉았다. '이거 참 원탁의 기사라도 된 것 같군. 심지어 날개도 있다네.' 기분이 좋은 커크가 스팍에게 속삭였다. 그들은 각자의 서신을 나눴다. 스타플릿으로부터 계승자에게 축하인사와 앞서 쌓아올린 관계의 권고함에 대해 확인하는 문서를 전달했다. 마찬가지로 계승자로부터 스타플릿에게 감사인사 및 관계의 권고함에 대해 확인하는 문서를 전달받았다. 커크는 탐사대원으로서 또 사절단으로서 마땅히 질문해야 하는 것들을 질문했다. 어떤 어려움이 존재하는지. 스타플릿이 도와줄 수 있다면 언제든 돕겠노라고. 주요 사안을 끝내고 나자 그들의 주제가 사적으로 변질되었기에 스팍은 부함장으로서의 업무를 마무리해도 된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그가 앞서 내린 대원들의 보고서를 확인하러 가도 되겠냐고 커크에게 질문했을 때 작은 소란이 일었다.

"나는 날기 싫어!"

멀리서 들렸지만 우렁찼기에 둘러앉은 모두가 들었다. 커크의 몸이 반쯤 일어났다. 스팍의 고개가 돌아갔다. 친위대 중 몇 명이 움직였다. 국왕은 커크를 안심시키며 고개를 저었다.

"내 아들입니다, 제임스. 날개를 쓰길 거부하고 있어요."

"…신념입니까?"

"본인은 그렇게 주장합니다. 부끄러운 꼴을 보여 면구스럽군요."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좋아, 스팍. 가보도록 해. 밤에 있을 축제에 늦지 말도록."

"네, 캡틴."  

소란은 짧았고 국왕이 당혹스러워 했기에 커크와 스팍은 더이상 캐묻지 않았다. 커크가 스팍을 보내주었다. 그는 더 머물 모양이었다. 숙소로 돌아온 스팍은 자신의 말대로 과학부 대원들의 행성 보고서를 확인하며 시간을 보냈다. 닥터 맥코이가 있을 병원에 들리는 것도 잠깐 생각해보았으나 엄밀히 말하자면 지금은 그들의 '업무 시간'이었기에 금세 목록에서 제외시켰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산들바람이 들어온다. 귀 끝을 감싸고 목덜미를 덮는 산뜻한 대기가 스팍에게 안정을 주었다. 맥코이의 말대로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자연적인 대기는 분명 심신안정에 도움이 된다.






나르고스는 아름다운 행성이었다. 낮과 밤이 존재하고 즐길 수 있을만큼의 더위와 추위가 반복되는 기후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건물은 모두 높고 뾰족했기에 줄지은 첨탑이 만들어 낸 스카이라인 위로 고개를 꺾어야만 별을 볼 수 있었다. 프레임이 나간 액자같군. 커크와 스팍이 계승자와 외교적 담화를 나누는 반나절 동안 꼬박 진료를 본 맥코이는 피로함을 호소하는 어깨와 목을 풀어주다 말고 별이 쏟아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렇게 깨끗하고 아름다운 풍경은 오랜만이야. 흉부에 힘을 주고 코 끝으로 한껏 숨을 들이마신 맥코이의 표정이 편안하게 가라앉았다. 이들의 안식년은 밤까지 계속되어 요란한 웃음소리와 북소리가 한데 섞여 멀리서도 들을 수 있었다. 마땅히 가봐야 했지만 조금 늦어도 별 수 없겠지. 맥코이는 이런 휴식이 좋았다.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홀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 지구에서도―이제는 과거를 복기하기 위해 '지구'라고 말해야 한다. 조지아 주도 아닌 '지구'!―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문득 맥코이는 대기 밖으로 튀어나와 성간 사이를 탐험하는 지금이 그의 말대로 우연이나 빌어먹을 신의 장난 따위가 아닌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린다. 지구에서 바라본 우주. 그게 나를 불렀을지도 몰라. 흔히 광고하는 [태양계 우주여행 10일 패키지 팝업]에 기웃거리지조차 않았던 청춘을 떠올리면 실로 이례적인 행보이긴 했다. 그리고,

"닥터 맥코이. 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고급장교이자 선의인 당신이 불참하는 것은 지침된 외교활동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런, 미스터 스팍. 곧 가려고 했네. 어차피 저들은 밤새도록 먹고, 마시고, 즐길게 아닌가? 중간에 슬쩍 얼굴만 비춰줘도 만족할거라 장담하지."


정말로 이례적인 행보가 하나 더 있지. '빨리 오십시오.'를 세 문장에 걸쳐 말할 수 있는 이와 만든. 맥코이의 말에 동의한 모양인지 별다른 대거리없이 선 스팍이 조용했다. 금방 돌아갈 것 같더니. 첨탑만큼이나 높게 보이는 스팍의 얼굴을 올려다보던 맥코이가 몸을 옮겨 자리를 터주었다.


"고급장교이자 부함장인 자네가 이렇게 빠져나오는 것은 지침된 외교활동에 적합한가?" 

"그러한 조항은 기술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러시겠지."


한마디도 안봐주는구먼. 일부러 소리내 덧붙이는 동안 스팍이 맥코이와 같은 자세로 주저 앉았다.


"무얼하고 있었습니까?"

"구경."


맥코이는 팔을 뻗어 첨탑 너머를 가리켰다.


"환자 중에 천문학자가 있었어. 저기 나란히 있는 세 별 보이지? 제일 왼쪽에 있는 별을 그들은 깃발이라고 부른다네. 다른 별보다 밝아서 대기가 나쁠 때도 육안으로 보인대. 나침반인 셈이지."


나르고스는 교류행성이었으므로 그들은 나르고스에 대해 기본적인 교육을 받은 적 있었다. 기린의 목이 긴 것처럼 나르고스의 깃발은 일정 수준의 상식이었다. 맥코이는 나르고스 행성의 병원체와 최근 발생했던 질병 등 다른 범위의 정보를 습득해야 했기에 이러한 상식을 간과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전개되자 스팍은 어떤 대답을 해야할 지 혼란스러워졌다.


"물론 자네도 알겠지만."


맥코이는 늘 생각을 읽는 것처럼 말한다. 지금처럼. 순식간에 무용한 망설임이 사라진다. 그가 하늘을 감상하는 동안 스팍은 맥코이를 감상한다. 마인드멜드는 전적으로 스팍에게 필요한 행위였다. 맥코이는 기꺼이 그의 시간과 마음을 들여 동의해주었다. 정신과 정신을 융합하는 격렬한 체험 이후 그들은 함께 먹고, 마시고, 웃었으며, 잠들었다. 스팍은 '영혼이 노래한다'는 서술을 온 몸으로 느꼈다. 늘 찬가를 부르는 기분이었다. 맥코이의 삶을 함께한 뒤로는 언제나 그러했다. 하지만 그는? 스팍은 마인드멜드 직후 그의 연인이 탄성처럼 내뱉은 단어를 기억한다. 순간 마주쳤던 절망의 눈빛 역시 기억했다. 우리는 이방인이야. 너와 나는 이종이야. 맥코이의 말이 어디에 근간을 두고 있는지 알았다. 그의 말은 사실만을 진술했으나 스팍은 틀린 명제라고 주장하고 싶었다. 어쩌면 그에게 요구하는 일이 많아지는 것은 해명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또한 자신을 위해서도. 확인받고 싶은 불필요한 마음.


"신기한 일이야."


한참만에야 맥코이가 입을 열었다. 그의 눈은 여전히 별을 담고 있었기에, 이번에는 스팍도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 봤다.

"무엇이?"

"똑같이 두 발로 걸어다니고, 대기를 마시고 비슷한 환경에서 생활하는데 단지 날개 한 쌍이 있다고 해서 이렇게 삶의 양식이 바뀌는 것 말일세."

지성체는 누구든 주장을 강화하고 싶기 마련이므로 스팍은 해명하려 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들도 같습니다.' 무엇을 해명하려는지조차 정확하지 않았다. 반박의 근거조차 찾지 못했다. 단지 탄소화합물이라는 공통점이? 꼬리를 무는 생각에 대답할 타이밍을 놓친 스팍이 입을 닫고, 맥코이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그들 신전에 들어가봤나? 끝도 없이 높은 천장! 아, 거기서 신이 내려온다 해도 믿을거야."

"마음에 들었나보군요."

"그래. 난 이렇게," 맥코이가 발을 굴렀다. "뿌리 박고 자란 모습이 좋아. 날개 하나만으로 역사와 전통이 바뀌는 걸세."

맥코이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그도 축제와 아름다운 환경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손을 맞잡진 않았지만 어깨가 닿아있었다. 닿은 어깨 너머로 따뜻한 체온이 전해졌다. 맥코이의 말이 스팍의 의문을 흐트렸기에 스팍은 그의 즐거움에 어떻게 동의해야할 지 몰랐다. 늘상 말을 잃어버리곤 했다.

"그때 봤던 것처럼, 벌칸은 돌과 사막뿐인가?"

"아니오, 닥터. 벌칸에도 바다와 산이, 호수가 존재합니다."

"가끔 궁금해져. 자넨 불쾌해할지도 모르겠군."

"무엇이 말입니까?"

"언젠가 벌칸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 임무가 아니라, 그냥 머물기 위해 가는 거 말일세. 관광이나, 여행이나. 짧게라도 말이야. 자네가 나고 자란 행성이 어떤 모습인지, 자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보고싶거든. 오, 물론 좋은 영향은 아니었겠지."

고개를 슬쩍 꺾은 맥코이가 장난스럽게 말을 맺었다. 그의 마지막 문장은 심기를 건드리기에 충분했으나 스팍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되려 기쁨을 느꼈다. 재차 떠올린다. 맥코이는 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말한다. 그래서 자주 말을 잃어버렸다. 불안하기도 전에 확인받는 마음. 

"전혀 불쾌하지 않습니다."

부드러워진 분위기에 슬몃 연인의 손을 잡았다. 검지와 중지를 끌어당겨 자신의 검지와 중지를 얽었다. 맥코이는 말없이 힘을 줘 깍지가 풀리지 않도록 했다. 마주한 눈이 상냥했다. 스팍은 기회를 틈탔다. 

"레너드."

"흠?"

"만약 춤추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라면, 아직 시간이 충분합니다. 제가 가르쳐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 모든 지성체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고자 한다. 순간 동그랗게 유선을 그리던 맥코이의 눈매가 삐죽해졌다. 빠져나가려는 손가락에 힘을 줘 끌어당겼다. 그의 눈썹이 불쑥 올라갔으나 모른 척 한다. 대신 단단하게 엮은 손 끝을 앞뒤로 움직이며 문질렀다.

"스팍." 

맥코이는 전보다 부드럽게 거절했다. 그러나 전과 같이 이유에 대해선 설명해주지 않는다. 기어코 스팍의 손목을 잡아 내린 그가 벌떡 일어섰다. 


 "춤은 추지 않더라도, 저기 가서 함께 웃고 떠들수는 있다네. 그러라고 온 게 아니었나?"


고집을 부리듯 주저앉아 움직이지 않는 스팍을 보던 맥코이가 그의 팔을 천천히 감싸 일으켜세웠다. 


"이봐, 스팍. 마인드멜드를 했다고 해서 나의 모든 걸 자네와 공유하고 싶은 건 아니야."


참으로 상냥한 음성이었다. 









아침부터 소란이 있었다. 늦은 밤까지 축제에 자리했던 커크는 맥코이의 [캡틴! 어서 병원으로 와주게! 골칫덩이가 있어!] 꽥 지르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벌떡 일어났다. 맥코이가 '짐'이 아닌 '캡틴'으로 호명할 때는 '당장 게으른 엉덩이 번쩍 들고 캡틴의 일을 처리하지 못할까'라는 지명에 가까웠기에 서둘러야만 했다.

예복 하단에 달려있던 뱃지가 사라진 줄도 모르고 뛰어들어온 커크가 진료실 위치를 묻기도 전이었다. 


"그저 저 위에 달린 장식품을 만지는 것조차 거부한단 말인가?!"


큰소리가 났다. 성난 맥코이의 음성이었다. 진료실에 들어서자 그곳에는 국왕과, 스팍과 함께 있을 때 들었던 목소리의 주인공―국왕의 아들―이 있었다. 맥코이는 커크를 보더니 화색을 띠며 데스크 앞을 벗어났다.


"하! 짐. 나는 손 쓸 도리가 없네. 날개를 달고 비행공포증이라니! 이건 마치 인간이 달리기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아."


간데없는 말에 상황파악을 하느라 좁아진 커크의 눈이 국왕에게로 향했다.


"닥터 맥코이에게 부탁했습니다. 한 번 봐달라고 말이오. 그리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니."

"그의 뇌는 완벽히 정상이라네. 문제가 있는 건 그의 신념과 정신이야."


사적으로 친분이 있다곤 하나 한 행성의 통치자였다. 그의 아들을 두고 이렇게 분노할 일인가? 맥코이의 태도를 지적하려던 커크의 말은 다음과 같은 소리에 파묻힌다.


"지구의 이카루스는 너무 높게 난 나머지 날개를 잃고 죽었다죠!"


목소리가 앳됐다. 그제야 목소리의 주인공을 면밀히 살핀다. 나르고스인의 큰 체격때문에 성인처럼 보였을 뿐, 국왕의 아들은 아직 어렸다. 바로 그 점이 맥코이의 속을 뒤집어놓는 것 같았다. 커크는 이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할 지 사적으로 해결해야 할 지 결정하느라 머리가 쑤셨다. 


"그건 신화에 불과해. 그리고 자네 날개는 밀랍으로 된 것이 아니라네!"

"우리가 알 지 못하는 성분으로 된 구름이 있다면요? 그 구름이 고체라면? 거기에 부딪히면 추락하고 말 거예요!"

"오, 이 한심한 청년같으니라고."

"본즈."


외교적으로도 사적으로도 선을 넘는 기분나쁠 언사까지 튀어나오자 재빨리 맥코이를 저지시킨 커크가 국왕에게 양해를 구했다.


"아닙니다. 닥터 맥코이는 충분히 노력했습니다. 내 아들의 공포증을 없애려고요. 그만 돌아가는게 좋을 것 같군요."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교각으로 향하는 두 나르고스인의 모습을 보던 커크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맥코이를 엄한 눈으로 쳐다보았으나 다른데 시선이 빼앗긴 그는 그저 혀를 차며 말할 뿐이었다.


"할 수 있는 걸 두려워한다는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본즈. 자네가 너무 몰아부친다고 생각하지 않나?"

"무엇을?"

"날개가 있어도 나는 걸 무서워할 수 있다네. 나로서는 그게 병증이라고 생각되질 않는 걸."

"이봐, 짐. 이곳에 '날개없는 자'들을 위한 시스템이 얼마나 구축되어 있다고 보나? 병원앞에서부터 외곽의 신전까지 강줄기가 무려 세 개나 있다네. 그런데 교각은 하나뿐이야. 나머지는 무조건 타인의 배려에 기대야하지."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건가?"

"…이들의 수명은 삼백 년이 넘어. 날개를 달고도 날지 못하는 삼백 년을 상상해보게."

"……"

"나는 그가 실패하지 않길 바랄 뿐이야."


냉랭하게 말한 맥코이가 등을 보였다. 커크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평소답지 않은 친구의 모습이 낯설었다. 국왕의 부탁은 염려지 강제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는 잘 해쳐나갈겁니다.' 다독이고 끝냈으면 될 일을. 커크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요란한 아침나절을 보낸 맥코이가 검진을 시작하기 전 숙소에 들렀다. 잠깐 자리를 비워도 그의 뛰어난 대원들에겐 아무 문제 없을 것이다. 맥코이는 가볍게 대처한 자신의 태도를 떠올렸다. 이런. 간밤에 들은 춤 얘기때문에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건지도 모른다. 기분이 가라앉는다. 


함선에 올라타면서부터 지구에 발을 붙이고 살았던 모습과는 안녕을 고했다. 벗어나기 위해 이러한 행로를 선택한 부분도 없잖아 있었다. 맥코이는 삶의 연속성이 두려웠다. 마인드멜드 이후 여러 감정이 뒤섞인 짧았던 순간이야 어쨌던지간에 엉망진창인 삶을 다시 한 번 봐야만 했다. 스팍과 함께였기에 그 일 자체가 괴로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개인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끔찍한 순간들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겪는 지독한 쓴맛이 있었다. 그것들을 모두 극복했기에, 혹은 극복하기 위해 대기를 박차고 우주로 향했다 생각했는데 막상 들춰보니 이곳에서도 별 다를 바가 없었다. 훅 불면 사라지는 먼지들처럼 그렇게 잊을 줄 알았지. 삶은 때때로 행복했지만 대체로 괴로웠다. 연인이 밟고 자란 땅이 궁금하듯 스팍도 그런 것이 궁금할까. 과거를 숨기고자함이 아니었다. 과거를 극복하지 못한 나약한 모습이 싫었다. 그건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고 맥코이 자신이 원하는 모습 또한 아니었다. 이렇게 나이를 먹고서 깨달음 하나 얻은 바가 없다니. 초라해질 때마다 부러 가슴을 펼쳤다. 개인의 존엄이 이렇게라도 지켜진다면 맘껏 모른척 할 예정이었다.

그러니 실패란. 날개를 가지고도 날지 않는다는 단순한 사실보다 더 큰 의미를 지녔다. 그것들은 영원히 남아 미래의 자신을 갉아먹는다. 맥코이 자신은 감수하고 살아야 하지만 아직 젊은 국왕의 아들에겐 선택권이 있었다. 지상에 머무르는 하루 반나절동안 맥코이는 국왕과 결탁했다. 그의 아들이 비행공포증을 극복하도록 힘 닿는데까지 도울 생각이었다.





가히 전쟁이었다. 설득과 논리는 무딘 창만큼이나 쓸모없었다. 아들의 공포심은 때마다 더해져 이제는 날개를 펼치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국왕의 협박엔 콧방귀를 뀌었고 맥코이의 응원엔 나약함으로 승부했다. 무엇이 그가 비행을 두려워하도록 부추겼나? 아무리 찾아봐도 혼자 얻은 결론이었다. 누구도 그에게 위험한 비행을 강요하거나 과도한 공포를 주입하지 않았다. 어르고 달래고, 혹시 잡아내지 못한 심리적 문제가 있는지 재차 검사까지 하고나자 맥코이도 그만 지쳐 나가 떨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우생학과 대량학살 등 타인에게 해가 되는 것 외의 신념과 싸우는 일은 불필요합니다."

"그 예쁜 입술을 놀리고 싶어서 왔구먼."

"…닥터 맥코이. 한 번만 더 방금과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면 당신을 중재위원회에 넘길거요."

오후부터 찬바람이다. 일찍이 검진을 하느라 열어둔 문으로 달갑지 않은 손님이 들이닥쳤다. 보아하니 제 발로 온 게 아니라 짐의 권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스팍의 말이 단호했기에 맥코이는 본인의 실수를 인정했다.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필요 이상으로 예민해졌다. 스팍이 신념이라고 말했다. 맥코이는 병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의사조차 잡아낼 수 없는 병증이라니! 고집을 꺾을만한데도 여전했다.

"이래서야 원 나무에서 밀어도 그냥 떨어질 인물일세."


가볍게 푸념한 맥코이의 말에 눈썹 각도가 빠르게 가팔라진 스팍이 대꾸했다.


"당신의 주장은 배타적이고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있군요."


비판을 넘어 다소 비난적인 어조에 이번엔 맥코이의 눈썹이 올라갔다.


"그들은 의사인 나에게 부탁했어. 불만이 있다면 말해보지 그래."

"아니오, 닥터. 불만은 없습니다. 다만 당신의 어폐에 대해 지적하고 싶군요."

"오, 이런. 또 그 춤 얘기인거지 스팍?"

"할 수 있는 것을 즐기지 못하다니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제임스 커크로군. 심드렁한 표정으로 스팍을 올려다 본 맥코이가 손짓했다. 


"전혀 다른 문제네."

"사실은, 닥터. 저는 같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저에게 보여주지 않은 것들이 있지요. 당신의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들 ― 당신이 실패라고 생각했기에 무시하고 넘어간 것들 말입니다."

"나는 나의 과거로 자네에게 판단받고 싶지 않아."

"아니오, 닥터. 당신의 과거로 당신을 판단하는게 아닙니다. 당신이 과거를 대하는 당신의 모습으로 판단하는거죠. 그를 비상시키겠다는 당신의 의견은 아집입니다. 당신의 말대로 삼백 년. 삼백 년 동안 언젠가 그가 원할 때 비상하는 법을 배울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요. 언젠가 그가 비행공포증을 자의에 따르든 타의에 따르든 이겨낼거라고 생각합니다. 설사 이겨내지 못하더라도 당신과는 관계없는 일입니다. 그의 선택이고 그의 삶이니까요. 그것은 실패가 아닙니다."

매섭게 대꾸한 스팍이 애초에 답을 들을 생각조차 없었다는 듯 진료실을 빠져나갔다. 후... 뺨을 볼록하게 만들어 한숨을 내쉰 맥코이가 고개를 꺾었다. 깃털 장식이 빙그르르 돌았다. 많은 것을 공유하는 연인으로부터 숨을 곳이 없다. 민망하기도 하고 뉘우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못된 일부분이 여전히 고집을 부린다. 백 번 양보해 병증이 아니라고 생각해보자. 모두가 날아다니는 사회에서 왜 날아다니기를 두려워하는가? "아이고…" 실로 죽는 소리를 낸 맥코이가 허리를 꺾었다. 그나저나 저 장식은 무슨 깃털로 만든거지? 기념 삼아 하나 정도는 사갈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말고 번뜩, 일어선다. 깃털! 정상적이지 않은 신호를 알아차리는데 영민한 맥코이는 몇 가지 조각을 동일선상에 올려둔다. 너무나 사소하기에 말할 수 조차 없는, 말할 수 없기에 물 밑으로 숨어버린 이야기! 비행을 싫어한다. 비행의 위험에 대해 설파한다. 날개를 펼치는 것조차 두려워한다. 맥코이는 그가 날개를 완전히 펼친 모습을 본 적 없었다.



원인을 알고나면 극복은 본인의 몫이지. 국왕의 아들은 아직 어리다.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기 쉽다는 말씀. 평소같았으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 일에 목숨을 건다. 국왕을 찾아갔다. 어쩌면 알아낼지도 모른다고 설명한다. 그와 함께 그의 아들을 미행하기로 했다. 검진표를 확인하는 일은 조금 미뤄도 되겠지. 국왕의 아들은 젊었기에 한곳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들로 산으로 쏘아다녔다. 이래서야 시간안에 업무를 못볼지도 모르겠어. 후회가 밀려오는 그쯤에 수상한 행적을 보인다. 좌우를 살폈다. 맥코이가 몸을 숙였다. 앞서오는 행인이 있나 고개를 돌려 확인하더니 순식간에 숲 속으로 사라진다. 그래, 뭔가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 같아. 맥코이가 빠르게 따라 붙었다.

지척에서 국왕의 아들을 살핀다. 그가 펼친 날개 한쪽이 성글었다. 국왕이 신음하자 맥코이는 얼른 그의 입을 막았다. 펼친 날개 틈으로 새가 보였다. 새들이 모여있었다. 눈을 가늘게 뜬다. 국왕의 아들은 날개의 깃털을 뽑아 그들에게 보금자리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새들은 종종거리며 뛰었다. 날개를 펴지 않았다. 사고로 잃었거나, 날 때부터 가지고 있지 않았거나.

이런 동화같은 일이라니!

동시에 같은 감상을 떠올린 그들은 몰래 물러나려 했다. 그러나 올 때와 달리 길을 찾는 눈이 당황하자 자연히 발이 서성였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들이 숨어있는 덤불로 국왕의 아들이 고개를 돌렸다. 몸을 낮췄지만 이미 늦었다. 아버지. 당혹스런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날개를 지닌 곳에서 날개를 쓰지 못하는 것들은 자연히 지워진다. 어린 국왕의 아들은 그들을 품고자 했을 것이다. 그는 철부지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개인적인 사건을 이런 해프닝으로 만들 필요는 없었다. 국왕의 아들이 품은 것이 무엇이든 ― 날개가 부러진 새나 삽시간에 내리치는 벼락이나 하다못해 지면에서 일정 이상 발을 떼면 불안에 떤다던지 하는 것까지 그건 그의 문제였다. 병증이 아니란 걸 알았다. 모든 검사결과가 맥코이의 바람과 달리 나왔을 뿐이다. 위축된 탓에 답지 않은 짓거리를 했어. 혀 끝이 쓰렸다. 


지금이 자리를 비워줘야 하는 타이밍인 걸 알았다. 국왕의 표정을 읽은 맥코이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는 괜찮을 겁니다. 아마 국왕도 알았을 것이다. 어떤 의사도 해결하지 못하리란 것을, 아니 해결은 문제를 전제한다. 애초에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다만 부모의 마음이란게, 의사를 데려와 호령함으로써 협박까지 불사하고자 하는 절박함마저도 쉽게 담곤 하지. 원인을 발견했으니 극복은 그들의 몫이다. 맥코이는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착륙할 때만큼이나 밝은 얼굴이 있는가하면, 크게 망한 데이트라도 치룬 모양인지 울상인 표정으로 좌표에 서는 얼굴도 있었다. 또 다시 우주를 향해 가야하는 시간이 돌아왔다. 승선은 오전부터 진행되었기에 그들은 마지막으로 햇살을, 바람을, 손 끝이며 눈 안에 담았다. 맥코이 또한 좋았다면 좋았을 일을, 힘들었다면 힘들었을 일을 겪었으나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을 두고 가려니 아쉬운 소리부터 먼저 튀어 나왔다. 휴식을 심하게 한 모양인지 안광이 반짝이다 못해 형형하기까지 한 커크가 그런 맥코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우린 더 멋진 것들을 보러 갈거야, 본즈.


장교들과 차례대로 인사를 나눈 국왕이 맥코이의 앞에 섰다. 맥코이는 처음 내렸을 때처럼 두 팔을 교차해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 그와 같은 방식으로 인사를 받은 국왕이 이번엔 손을 내밀었다. 오. 맥코이 역시 황급히 손을 내밀어 맞잡았다.

"이 난리를 겪어서 제대로 휴식을 취했는지도 모르겠구먼."

"아닙니다. 충분히 쉬었습니다. 부끄러운 짓도 했고요."

"상호간에 협약된 멍청한 일이었으니 마음에 두지 말게나."

"얘기는 잘 끝내셨습니까?"

"두고봐야지."

"너무 걱정하지마세요. 그는 아직 자라는 중이니까요."


처음 사안에 대해 들었을 때 마땅히 했어야 할 말을 이제야 꺼낸다. 날개를 젖히고 맥코이를 올려다보던 국왕의 아들이 양 팔을 교차해 인사했다. 따스하게 웃으며 받아준 맥코이가 '잘 간직하렴. 아주 멋있구나.' 날개를 가리켰다. 산들바람이 깃털을 흔들고 지나갔다.  

맥코이와 커크를 포함한 마지막 조가 트랜스포트룸에 도착하는 것을 끝으로 마침내 모든 대원의 승선이 이루어졌다. 우후라는 식물 견본과 기름진 토양을 가져왔다며 한껏 들뜬 술루의 옷자락를 털어주었다. 밑단에 흙먼지가 묻어있었다. 또, '로씨야에서 자주 봤던 풍경입니다.' 커크의 잘 보냈냐는 물음에 '그럼요, 캡틴.' 받아친 체콥이 덧붙였다. 아쉬움과 가시지 않은 흥분이 함교를 채웠다. 그러나 저러나 함장은 몫을 해야하는 법.

"미스터 술루. 전방 워프2. 궤도를 벗어나게. 작별을 고하자고."

"Aye, Sir."









메디베이가 조용했다. 침상이 줄 지어있는 내부는 어둑했고 맥코이의 사무용 책상만이 어스름히 밝았다. 남들 놀 때 일했으니 남들 일할 때 쉬라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향후 네 시간은 고요할 것이다. 곁에서 의무실을 지키겠다는 채플까지 물린 맥코이는 허리를 반듯하게 펴고 앉아 나르고스에서 있었던 일의 보고서를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물론 그의 영혼도 휴식을 즐길 줄 알았기에 브랜디를 채운 잔이 그의 곁에서 친구 노릇을 했다.

"닥터 맥코이."


문이 열림과 동시에 고개를 든 맥코이가 만연에 은근한 웃음을 걸쳤다.


"미스터 스팍."


아직 쿼터에 들리지 못한 모양인지 하선할 때 걸쳐입은 로브가 그대로다. 맥코이는 저 옷이 스팍에게 퍽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제 내가 자네에게 고마워해야겠군."

"……"

"나르고스에서 말이야."

"캡틴은 당신이 분노하는 이유가 내부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에게 가혹하게 말한 건 논리적인 이유에서였습니다. 저의 아이디어였지요." 


목을 꼿꼿하게 세운 스팍이 말했다. 


"나는 춤추는 걸 싫어해."


올려다보는 맥코이의 얼굴이 붉었다. 자신이 인도하고자 했던 주제가 아니었기에 스팍의 눈썹이 비죽 올라갔다. 그러나 맥코이가 꺼낸 대화 또한 그들의 이야기 중 하나였으므로 스팍은 빠르게 받아들였다. 나는 춤추는 걸 싫어해. '춤을 추지 않는 유형의 사람'과는 다른 서술이다. 그제야 연회에서의 맥코이를 떠올린다. 턱시도를 입은 커크가 늘 즐겁게, 할 수 있는 힘껏 대원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청해오는 춤마다 모두 받아주었기에 그의 친구이자 선의인 맥코이 역시 어디선가 그러고 있을거라 생각했었는데. 떠오르는 것은 그가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고, 술을 마셨다는 것 뿐이다.  


"마지막으로 췄던 건 결혼식에서였어. 아 이런, 공룡의 뼈만큼이나 오래된 얘기를 하게 만드는군. 그녀는 내 모든 관절이 춤추길 거부한다고 말했지."


덜컹, 일어나느라 의자가 흔들렸다. 맥코이는 손에 쥔 술잔을 기울여 한 모금 넘기고는, 스팍에게 내밀었다.


"레너드.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잔을 받아든 스팍이 그것을 책상 위로 내려놓았다. 그는 아직 업무중에 있었다.  


"그날 먹고 마시고 즐기는 모든 것을 다 했는데 유독 춤만 그래. 아마 평소에 춤을 추지 않았기 때문일거야."


마주한 시선이 흐리지 않았다. 맥코이의 눈과 입은 웃고 있었지만 스팍은 몇 번의 경험으로 피부 밑에 서린 표정을 볼 수 있다.

 

"나에게 춤은 실패의 흔적이야. 도통 즐거울 수가 없지."

"……"

"내게도 극복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네. 언젠가는 인정할 수 밖에 없어. 나의 어느 부분은 아주 빌어먹을 겁쟁이라는 걸."


맥코이의 손이 스팍의 명치를 가볍게 짓눌렀다.


"인간은 이곳에 마음이 있어."


심장이 있는 위치도, 머리가 있는 위치도 아니었지만 스팍은 반론하지 않았다.


"자네도 어느 부분은 인간일테니까. 아마 알게될거야."

"당신이 겁쟁이라는 것?"

"아니.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말이야. 오기나, 고집이나… 뭐, 무엇으로 불러도 상관없겠지. 춤을 췄기 때문에 실패한 게 아닌데, 춤을 추지 않고서라도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자네는 이해하겠나?"


가슴께에 닿인 손바닥이 살짝 떨렸다. 스팍은 인간들이 어떻게 교류하는지 알 지 못했다. 기실 머릿속을 들여다보지 않고선 어떤 방식으로 서로를 보이고, 서로의 증인이 되며 서로를 신뢰하는지. 신뢰를 뛰어넘어 감정을 교류하는지 무지했다. 서툴렀다. 마인드멜드는 온전히 스팍만을 위한 행위였다. 지금은. 그것으로도 볼 수 없는 맥코이의 모습이다. 그가 동의했다. 이런 모습마저 공유하는 것에. 맥코이의 손바닥이 닿인 곳부터 몸 안이 뜨겁게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그가 자신의 속에 들어와있는 것처럼. 스팍은 너무 늦지 않길 바라며, 가슴팍에 얹어진 맥코이의 손을 쥐었다. 천천히 들어올려 입가로 가져갔다. 그의 굽은 손가락에 입을 맞추고, 손등에 뺨을 부볐다. 인간의 교류는 마인드멜드만큼이나 강력하지 않았지만 그 불확실성을 치환한만큼의 용기가 필요했다. 곱절의 시간이 들었다. 그리고 사랑스러웠다. 인간에게 있어 마인드멜드란 함께 하는 시간 내도록 노력하는 일임을 알게된다. 맥코이에게 마인드멜드가 필요하지 않았던 이유, 그의 요구가 자신과 같이 많아지지 않았던 이유. 스팍이 원하기 이전부터 해왔었기에. 자연히 시선이 닿는다. 스팍은 마인드멜드 이후 계속해서 전하고자 했던 마음을 꺼냈다.


"이해합니다, 레너드. 당신의 두려움을요. 나는,"


머뭇거린다. 재빨리 사전을 뒤져보지만, 지구의 언어는 커녕 벌칸의 언어로도 적합한 '마음'을 찾기가 힘들다. 그래서 편법을 사용한다. '마음'을 드러낸, 이미 만들어진 말을 사용함으로써―


"…나는 아무도 피하지 못하는 행복에 대한 경이적인 연구를 했습니다. 어떤 영혼이 흠이 없을까요. 나는 이제 아름다움에 인사할 줄 압니다."


그의 마음을 보았듯이 그만큼의 마음을 떼어 보인다. 나의 일부분은 당신과 함께하기로 한 순간부터 이미 장렬하게 실패했노라고. 그러나 그것이 실패던가? 스팍은 계속되는 물음 끝에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의 연인도 그와 같은 결론을 내려야 할 때가 왔다. 스팍은 기꺼이 동행하고자 했다. 맥코이의 요청이 있었고 스팍의 동의가 따랐다.


"나는 지는 것을 아주 싫어해."


스팍의 말에 힘을 얻은 맥코이의 눈이 단단하게 빛났다. '하!' 작게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그의 턱이 살짝 들려 젠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래도 좋았다. 스팍은 마땅히 대답한다.  


"알고 있습니다."

"벌칸에선 어떤 춤을 추지?"


아, 용기란 무릇 두려움을 아는 것.  


"…벌칸에선 주로 독무를 춥니다. 예술적 의의를 표현하는 수단이나,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육체의 선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자네가 나와 추고 싶어하는 춤은 어떤건가?"


나아가 함께 하는 것.


"지구의 왈츠와 비슷합니다. 손을 잡고 같이 발의 움직임을 맞추는 거요."

"…손을 잡고?"

"공표된 관계에서만 이뤄지는 행위입니다."


조심성없이 스팍의 손을 쥔 맥코이가 그를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순순히 끌려가며 동그란 머리통을 본다. 손에 닿은 뜨거운 온도를 느낀다. 보지 않아도 맥코이가 웃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구에서는 리드하는 사람의 손바닥이 위를 향하곤 해."


스팍의 손을 놓아 준 맥코이가 돌아선다. 그의 손이 허공을 갈랐다.  


"벌칸에서는 여성이 손을 위로 보도록 펼칩니다. 허락없이 손가락이 닿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지요."

"아, 그 몹쓸 문화!"


맥코이가 키득였다. 그러나 손이 닿인다. 맥코이의 손바닥 위에 손을 얹는다. 살짝 잡아 끄는 온도가 따뜻했다. 그의 이마가 어깨에 닿았다. 스팍은 그가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후... 맥코이의 숨이 낮게 흐트러지고, 그것을 신호로 천천히 발을 움직인다. 한 발 뒤로 물러나면, 맥코이의 발이 불쑥 들어왔다. 한 발 옆으로 움직이면, 그의 발이 옆으로 따라 움직였다. 허리를 끌어안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음악이 없어."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필요해보이진 않는군요."







연회가 시작되었다. 각종 행성의 악기가 저마다 각자의 선율을 뽐냈다. 그들의 친구 커크는 턱시도가 작아진 것 같다며―'아니네, 짐. 턱시도가 작아진게 아니라 자네의 몸이 불었어. 이번 검진에서 말이야…' '이런!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건가? 난 가끔 자네가 스팍에게 물드는 것 같다고 생각하네.' '그런 모욕을 듣고 있을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만 일어나보겠습니다.'― 예외적으로 함선 예복을 걸쳤다. 한껏 꾸민 대원들 사이를 누비는―함장은 언제나 인기가 많았다― 다소 심심한 노란 상의를 보며 웃던 맥코이가 술잔을 비웠다. 지난 두 번의 연회와 마찬가지로 구석에 앉아 자연스럽게 동화된다. 방해받을 일도, 눈에 띌 일도 없다. 기성곡이 아닌데 귀에 익은 음악이 들린다. 스팍이 즐거움으로 작곡한 왈츠가 연주되고 있었다. 그의 쿼터에서 연주하는 것을 몇 번 들은 적이 있다. 자연히 목을 빼고 스팍이 있을만한 곳을 찾는다. 악기를 연주하는 단원 사이에는 없다. 그렇다면 어디로. 고개를 돌리기도 전 그가 나타난다. 마주한 시선이 평소보다 반짝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런, 그래. 네 맘대로 해보라고. 맥코이가 일어섰다.

스팍은 맥코이를 보고 있었다. 상기된 그의 뺨과 목께, 쑥스러움을 느낄 때 오히려 가라앉는 눈빛과 처음에는 잘 읽을 수 없었던 그의 입매를. 마주하던 맥코이의 시선이 민첩하게 양쪽을 훑는다. 대원들이 많았지만 그들이 모두 부함장과 CMO인 것은 아니었다. 그가 어깨를 밀치고 도망갈 확률에 대해 계산하느라 다리에 힘이 들어갈 때쯤, 불쑥 손이 올라온다. 맥코이의 눈썹이 비죽 올라갔다. 그는 말하고 있었다. '안할거야?' 그러니까, 함께 하는 동안은 계속해서 노력이다. 스팍은 인간의 교류 방식을 절실히 느끼며 맥코이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외계인과 함께 춤을 춘다. 함선에 탈 때까지 문장을 구성하는 그 어떤 요소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문장의 모든 요소가 현재의 스팍을 서술했다. 손을 맞잡고 맥코이의 발을 따라, 또 맥코이의 발이 자신의 발을 따라 움직인다. 신발 끝이 반 원을 그리며 돌았다. 붉었던 맥코이의 얼굴이 평온을 찾았다. 그의 시선이 따스했다. '만족하나?' 짖궂게 물어오기도 했다. 스팍의 손을 쥔 맥코이의 악력이 살짝 세졌다. 의문을 표하기도 전 그의 발 끝이 멀어지며 상체 사이가 벌어졌다가, 다시 훅 끌어당긴다. 반동으로 맥코이의 몸과 바짝 붙게 된 스팍이 기쁨으로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보다 더할 순 없을 겁니다."


외계인과 함께 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