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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8. 17:15 - MOZONG

[TOS/스폰즈] 세상에 틈이 생겨, 우리가 하늘을 만졌더니




Star trek: The Original Series 


"The Empath" 

"The tholian web"

"For the world is hollow, and I have touched the sky" 



※ 81번까지 연애하던 그 애들입니다.









CHAPTER 1




율법이 다른 외계종족과 조우했다. 괜찮았다. 그것은 그들의 일이었다. 율법이 다른 이들은 고통의 방식으로 실험했다. 이해했다. 스타플릿에겐 최우선 지령이 있었으므로. 마침내 율법이 다른 이들이 탐사대를 제물로 삼고자 했을 때 그들은 더 이상 괜찮지 않았다. 최악의 상황에서 차악을 택하기 위해 앞다투어 단두대에 올랐다. 착하기에 가장 질긴 자는 의사요, 지도자와 논리학자는 그를 한 번 잃었다.


모든 것이 돌아왔을 때 그들은 익숙한 논쟁으로 서로를 위로했다. 잃어버린 목숨을 돌려 받았다. 교훈을 나눴다. 신비의 존재가 우주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상상하며 눈을 빛냈다. 그들의 세상은 평화를 찾은 것처럼 보였다.


닥터 맥코이는 시프트가 끝나기 무섭게 개인실로 향했다. 완치된 몸은 멀쩡했으나 하루만에 신장과 폐와 동맥이 망가지는 내상을 입은 데에 따른 스트레스가 있었다. 머리는 신체가 받았던 고통의 강도를 기억했다. 후두엽이 쿡쿡 쑤셨다. 그는 빠르게 움직였다. 환복을 하고, 씻고, 침대에 바로 눕고자 하는 욕구를 억누르며 모니터가 있는 데스크 앞에 엉덩이를 붙였다.

"짐 커크."

악당들이 집어 삼키는 흔한 이름처럼 맥코이는 신음하듯 그의 훌륭한 상관이자 막역한 친구의 이름을 읊었다. '자네가 이렇게 무사해서 다행이야.' 진실된 힘을 가진 눈이 맥코이와 마주했다. 뜨거운 손바닥이 어깨를 짚었다. 별 거 아니라는 듯, 너털웃음을 짓기도 전에 엄해진 목소리가 말했다. '구체적인 사유서를 쓰도록 해. 다시는 그런 시도를 하지 않겠다는 말 역시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군. 자네의 과오를 연방에 알리진 않겠어. 사유서는 개인적으로 받을거야.' '이봐, 짐. 그건 나의 과오가 아니야. 다시 돌아가더라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하겠어.' '이 이상 나의 말을 거스르지 마.' 맥코이는 그의 함장이 또 한 번 자신의 선원을 잃었다는 사실을 복기했다. '...알겠습니다, 캡틴.' 

닥터 맥코이는 함선의 수장과 일등 항해사에게 약물을 사용했다. 자신의 몸을 내던지기 위해. 나의 대처방법은 비윤리적이었으나 상황 타개에 옳았다. 그는 사유서를 가장한 반성문을 써야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닥터 맥코이."

개인실 밖에서 목소리가 들린 것은 맥코이가 반성문, 아니 사유서의 구두점을 두 개에서 네 개로, 네 개에서 여덟 개로 단지 하나의 문장만을 가리키는 부속어구들을 끊임없이 늘려 규정 규격의 3/4를 채웠을 때였다.

"오, 스팍. 왔는가?"

그들은 즉각적인 허락없이도 개인실을 드나들 수 있는 관계였기에, 스팍은 그렇게 했다. 맥코이는 눈짓으로만 힐끔 인사를 하고 패드에 코를 박았다. 두 사람은 행성에서 함교로 올라온 후 한 번도 사적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아니, 적어도 맥코이는 시도했었다. 대화를 나누지 않은 건 스팍이다. 메디베이로 내려오기 전 잠깐 마주친 시선에 맥코이는 '일이 잘 풀렸으니, 좋지 않은가?' 그의 오래된 버릇인 뒤꿈치를 통통거리며 시선을 보냈으나 스팍은 그저 등을 돌리고 스캐너를 확인했을 뿐이었다. 그것은 '부질없습니다, 닥터.'나 '업무도중 사적인 순간을 만드는 것은 윤리의 회색영역에 들어갑니다.'의 뜻이 아니었다. 강제로 대화를 끊는 제스처에 가까웠다. 맥코이는 짧은 순간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지만 다시 스팍에게 눈치주는 일은 하지 않았다. 맥코이는 스팍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래서 지금도, 시선을 마주하는 대신 패드를 채운 빽빽한 줄글을 읽으며, 아니 적어도 읽는 척하며 얘기를 잇는 터이다.

"짐이 내 업무를 두 배로 만들어서 할 일이 많아."

보이지? 패드 모서리를 슬쩍 기울여 그쪽으로 보여주었다. 이미 침대가 아닌 데스크에 앉아있는 광경을 본 순간 스팍의 추리는 결론까지 당도했을테지만 읽으라고 보여준 게 아니었다. 맥코이는 본인의 행동이 너무 연극적이었는가 잠깐 고민했다. 기척이 느껴졌다. 스팍의 팔이 상체 앞에 성문을 쌓았다. 저것은 마음의 문이다. 맥코이는 언젠가 저 행동에 대한 이름을 붙인 적 있다. 스팍은 골몰하거나 동의하지 않을 때, 또한 가르침을 주고자 할 때 팔짱을 끼곤 했다. 뒷목이 뻣뻣해진다. 맥코이는 잘못하지 않았지만 스팍의 경우와는 다를 수 있다. 그래, 다를 수 있지. 잘못이 없다는 사실은 유효하다. 어디보자, 해당 약물은 변형 벤조디아제핀 계열로 효과가 빠르나 적정량에 의해 정상적인 수면 구조를 유도함으로 인체에 무해하며...

"닥터 맥코이, 당신과의 관계를 종료하고 싶습니다."


맥코이는 읽는 것을 멈추었다.



그들의 '긴밀한 관계'는 초록불이었다. 서로의 손과 발을 어루만지고 시간과 시간 사이에 무한한 공간이 존재하는 것처럼 자음과 모음을 끼워맞췄다. 머리카락을 헤집고 입맞춤을 나눴다. 닿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것처럼 어깨를 붙였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은 끊임없이 온기를 나눴다. 가볍게 농담하고 깊게 파고들었다. 종료란 단어로는 그들의 관계를 멈추게 만들 수 없었다. 이미 그들의 관계는 우주의 한 단면을 두텁게 만들었으므로. 때문에 스팍이 얄팍한 한 단어로 제동을 걸었을 때 맥코이는 항복하지 않았다. 대신 본인이 생각하기에 합당한 원인을 견주어보았다. 이런, 너무 많구먼. 금방 괘씸해진다. 그렇다면 어떤 것도 관계를 종료할 만큼이 아니란 소리군. 맥코이는 용기를 얻었다. 

"이유는?"

"당신의 위기상황 대처능력에 전혀 공감할 수 없으며 이후 특정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이를 기반으로 더 이상 당신을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논리적이군."

스팍이 화가 났다. 맥코이는 함교에서 느꼈던 그의 냉담이 이렇게 깊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떠올린다. 이 정도의 결과가 나올만한 논리적 유도가 존재하는가? 타원과 사각형으로 된 단계를 띄엄띄엄 지난다. 대답은 아니오. 맥코이는 이어질 말을 차분하게 기다리기로 했으나 다음 순간 계획을 철회했다.

"또한 당신이 삶의 의지를 버리고 그들의 실험대상이 되었을 때,"

"나는 그런 적 없네." 

맥코이가 빠르게 반응했다. 삶의 의지를 저버린 적 없다. 그는 살기 위해 몸을 던지기로 결심했었다. 

"당신이 포기한 많은 요소 중에 저와의 관계 역시 목록에 있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다만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았을 뿐이야. 잘난 벌칸 뇌로 생각해보게. 자네도 얼마없는 경우의 수 중 그 선택지가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했을테지.

"나에게 책임을 지울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레너드. 나의 말은 당신에게서부터 나왔습니다."

이런 정말이지 분노하고 있군! 벌칸이 분노라니! 맥코이는 입을 벌려 웃지도 못했다. 그의 온도 역시 눈 앞의 벌칸만큼이나 차갑게 변했다. 마치 가운을 벗고 대기 중이던 운동선수들처럼 서로에게 쉼없이 말을 쏘았다. 말은 대화가 아니었기에 섞이지 못했다. 그것들은 멋대로 굴러떨어졌다. 맥코이의 언성이 점차 높아졌다. 눈을 감으면 출력장치가 고장나는 기계처럼 스팍의 얼굴이 굳었다.   

"제가 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맥코이. 적어도 목숨을 건질 순 있었겠죠."

"평생 정신적, 심리적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함에도? 자넨 더 이상 어떤 탐사도 아니, 탐사는 커녕 올바른 생활조차 할 수 없었을 걸세."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습니까? 승산없는 논쟁을 시작하지 마십시오. 나는 당신의 감정적인 선택에,"

"말조심하게." 

맥코이가 가로챘다.

"치가 떨립니다."

"제기랄, 스팍!" 

마침내 벌떡 일어난 맥코이가 스팍의 코 앞까지 다가와 위협했다. 불타오르는 눈과 입은 턱을 씹어먹을 것처럼 사나웠다. 이글거리는 높은 온도와 다르게 그의 말은 숨 속에 낮게 실려 스팍의 얇은 고막을 울렸다. 

"자네는 절대 나를 이해 못 해.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겠지. 그 반쪽짜리 초록피를 가지고 있는 한! 나의 선택은 논리나 합리를 따지지 않아. 나는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믿고, 따를 뿐이야. 나의 선택에 논리가 없다 마음껏 폄하해보게. 나는 그 누구보다 내 선택에 만족하니까!" 

맥코이의 손 끝이 칼날처럼 스팍의 얼굴을 겨누었다. 위협당하진 않았지만 스팍은 이것이 충분한 경고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시선이 계속해서 얽혔다.

"짐의 비판은 달게 받을 수 있어. 그는 함장이니 배를 효율적으로 운용해야 하겠지. 하지만 자네의 비난을 듣고 앉아있을 의무는 내게 없네."

맥코이의 언사에 뺨이 푸르스름하게 물든 스팍이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분명 선을 넘은 모욕적인 말이었으나 맥코이는 미안해하지 않았다. 그의 말은 이 순간 실수가 아니라 진심이었다. 맥코이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마치 천형처럼 따라붙는 자기애의 말로와 같았다. 같은 상황이 와도 나는 나를 바치겠어. 그게 의사로서 가질 수 있는 나의 명예니까. 다소 낭비적인 감정과잉이라는 것을 알았으나 맥코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유전자나, 적어도 삶에 새겨진 그의 이름과 같았다. 몸을 던지지 않으면 불안했다. 희생과 같은 문장에 주어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짐도, 스팍도 아닌 레너드 맥코이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약점을 알고 있으니 가장 거세게 방어한다. 말마따나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지. 매서운 눈이 분명한 화를 담은 갈색 동공을 노려본다. 맥코이가 다가왔을 때, 이미 거리를 벌리기 위해 팔짱을 풀었던 스팍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맥코이의 눈썹이 불쑥 올라간다. 맥코이는 그의 약들과 마찬가지로 스팍의 속을 뒤집어 놓는 재주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왜. 한 대 쳐보고 싶나, 응?"

맥코이의 빈정에 스팍의 손마디가 굽이쳤다.

"...그러면 당신의 뼈가 부러집니다." 

겨우 숨을 조절한 스팍이 씹어뱉듯 말했다.

"알면 꺼지게." 

맥코이가 그의 어미를 후려잡았다.

순간 맥코이의 어깨를 잡아챈 스팍이 그를 벽으로 처박았다. 맥코이가 신음했다. 스팍의 숨소리가 사라졌다. 사냥을 준비하는 짐승처럼 온 몸이 낼 수 있는 기척을 죽였다. 반대로 맥코이의 숨이 점차 커졌다. 그는 이제 씩씩거리기까지 했다. 맥코이의 목께가 붉게 달아올랐다. 자신의 어깨를 쥔 스팍의 푸르스름한 손을 쳐다본 맥코이의 시선이 스팍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나의 선택을 비난하고 싶었더라면 정당하게 이의를 제기했어야지, 이 약삭빠른 뾰족귀야. 내 쿼터에 제 발로 찾아와서 관계를 논한단 말인가? 자넨 부끄러움도 모르나?" 

맥코이가 형형한 눈으로 속삭였다. 스팍은 한참이나 그를 노려보았다. 맥코이의 관점에서, 벽에 바짝 붙은 등이 뻐근할 때가 돼서야 스팍은 그의 어깨를 놓아주었다.


"...잘 머무시오(be stay), 닥터."





*






제임스 커크는 금세 함교의 불편한 기류를 읽어냈다. 그의 충성스런 친우가 들어설 때마다 보이지 않는 파장이 이곳은 자신의 영역이라며 소유권을 주장했다. 커크는 함교의 그 어느 것에도 주인을 양도한 적 없었기에, 관찰했다.

"캡틴. 저들의 지식은 지구의 19세기와 비등합니다. 만약 함선의 모습을 보인다면 이는 그 자체로 최우선지령을 무시하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짐. 그들은 전쟁을 앞두고 있어. 우리는 그들에게 더 나은 세계를 보여줄 의무가 있네."

일등 항해사와 선의가 나누는 평범한, 아니 평범하지 않은 수십번 째 논쟁을 들으며 제임스 커크는 마침내 깨달았다. 그는 영리한 사람이었다.


오프 시프트에 굳이 시간을 내어 약속을 잡는 일은 흔치 않았지만, 영 없던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매순간 일을 함께 하는 동료였으나 가끔은 직무의 무게를 덜어두고 만날 때 더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기도 했다. 최근 사소한 관계 변동으로 인해 유독 자유시간이 많아진 스팍은 개인 연구를 위해 실험실에 들린 후, 여유를 두고 광장에 들어섰다. 

"캡틴." 

430여 명이 승선한 엔터프라이즈는 년 단위의 탐사를 위한 연방의 고급 함선이다. 이는 곧 사 백여명이 넘는 인원들의 생활권이 년 단위동안 겹친다는 뜻이기도 했다. 지성체에겐 지면에 붙어 있거나, 부피를 감당하기 위한 물리적 공간 외에도 필수적으로 '심리적 공간'이 필요했고 연방은 탐사 함선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탐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모든 조건을 수렴했다. 그들은 함선의 홀수번째 덱 사이마다 레크리에이션 룸을 배치했고 적당한 너비의 라운지 역시 만들었다. 그들의 뛰어난 휴게공간 중 실제 대원들이 가장 많이 애용하는 곳은 홀로그램과 출력판이 설치된 작은 광장과도 같은 이곳이었다. 그들은 실제로 이곳을 '광장'이라고 불렀다. 홀로그램은 물이 흐르는 소리와 숲 속의 싱그러운 바람을 불러 일으켰고 한 면을 차지한 거대한 출력판은 정해진 시간 동안 인공적인 태양열과 빛을 내보내주었다. 빛을 통한 에너지원은 그 자체로 따스한 힘을 가졌기에 태양계에 고향을 두지 않은 이들도 이곳에서의 휴식을 즐겼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커크 역시 광장을 사랑했다. 

"오, 스팍." 

스팍의 등장에 커크가 자리를 터주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온기를 쬐었다. 

"이런. 자네에게도 다른 의복이 있다는 걸 잊고 있었군.” 

간략한 인사에 스팍은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였다. 부쩍 업무시간에만 붙어 있었으니 정복아닌 복장을 하고 있는 모습을 인사삼을만 했다. 태양광이 내리쬐 이곳만 온도가 따뜻했다. 스팍은 정면으로 빛을 받으며 휴식을 취했다. 커크 역시 아직 말이 없었다. 그들은 잠시간 침묵을 지켰다. 


가끔 '친구'로서 함께 시간을 보내긴 했으나 그래도 이런 자리에는 용건이 존재했다. 커크는 친절했지만 과용을 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스팍의 눈치가 바빠진 것을 기민하게 알아챈 커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요즘 과학부와 의료부의 협업 시스템이 더할나위없이 순항이라지.” 

“…맞습니다, 캡틴." 잠시 머뭇거리던 스팍이 이어서 말했다. "테란의 B형 혈액형에 한해 특정 형태를 포함한 이온폭풍에서의 광증을 중화시킬 물질을 찾아냈으며 과학부에서는 이 물질이 인간과 같은 포유류의 성장과정에 미치는 영향이 있는지 실험 중에 있습니다.” 

사실만을 언급하는 한편, 스팍은 열심히 의문을 제기했다. 이미 보고서에 기록된 것들이다. 보고서의 내용을 캡틴 제임스 커크가 확인했으며, 그의 사인까지 완벽하게 찍혀 정리된 문건이다. 어째서 캡틴은 다시 언급하는가? 스팍은 문득 '과학부와 의료부의 협업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이미 많은 말을 쏟아내고 난 뒤였다. 다행히도 다음 문장이 시작되기 전 깨달았기에, 주제를 확장시키지 않고 입을 다물 수 있었다.  

“음, 그래. 알고있네. 실험용 트리블의 출산제어 항목이 변경됐다는 것도, 화원에서 새로 발견한 변이 버섯의 동물반응실험을 시작했다는 것도 말이야.” 

“…”  

“얼마나 일사천리인지 과학부와 의료부의 결재가 최대 십분 상간밖에 되지 않던데.” 

스팍의 의문에 대해 부드럽게 '그렇다'고 표한 커크가 용건을 꺼내들었다.

“네, 캡틴. 우리는 현재 탐사행성을 찾지 못한 지 약 19시간이 지났으며 그 사이 진전 가능한 모든 연구에 대한 사안을 결정하는 게 효율적인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조율하지 않았다는 말이겠지.” 

“…네?” 

“들었잖나, 스팍. 조율하지 않는다고.”

“…” 

“비율이 정확해. 과학부의 의견과 의료부의 의견이 각 각 채택되는 거 말야. 나는 함선이 빠르게 운영되는 걸 원하는 게 아니야.” 

“캡틴.”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긍정적인 발견을 위해 모두의 의견이 쌓여야 한다는 걸세. 자네와 닥터 맥코이의 논쟁이 그저 소모적이라고 생각했다면 내가 관두게 만들었을 거야. 그건 잘못된 생각이네. 확신과 안일함은, 물론 그 역시도 큰 힘을 갖지만 새로운 걸 만들어내기엔 턱없이 부족하지 않나.” 

“…” 

“시간이 꽤 흘렀지? 스팍, 자네와 본즈가 해결해야 하는 일이니 내겐 아무런 권한도 없네. 다만 이 우주선의 함장은 나라는 점을 기억해줬으면 좋겠군. 나는 지금 과학부와 의료부가 합동으로 하는 일의 처리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방어할 순간도 없이 폭격을 맞은 스팍의 상체가 뻣뻣하게 굳었다. 불편한 관계를 이어가느라 부린 잔꾀가 간파당했다. 그제야 오프 시프트 때는 늘 '이런! 업무시간은 끝났네.'로 호칭을 격하시키던 캡틴이 오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커크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가 머뭇거렸다. 침묵을 지키는 스팍을 힐끔 쳐다본 커크가 은근슬쩍 운을 띄웠다. 

“…많이 심각한가?” 

“짐.” 

스팍은 재빨리 그들의 위치를 조정했다. 

“싫으면 말게.” 

함장의 권한을 오랫동안 효율적으로 사용했던 그는 전환도 매우 빨라서, 직전까지 엄하게 굴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입술을 삐죽이며 양 팔 들어 보였다. 커크가 무게를 들어내는 동안 고민하던 스팍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선, 현재 과학부와 의료부의 빠른 일처리 건의 정확성과 합리성에 대해선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그것을 조절하고 있다 확신합니다." 

'그런가? '되묻는 눈이 스팍을 쳐다보았으나 스팍은 멈추지 않고 다음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닥터 맥코이와 더 이상 논쟁하지 않는다는 캡틴의 말은 정확합니다. 그와 나는 공적인 대화 외에는 말을 나누지 않는 것으로 암묵적 합의를 하였습니다.” 

커크의 눈썹이 살짝 모였다. 이번 다툼—오, 물론 그들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크고 작은 충돌을 겪었다. 어떤 관계도 거기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이 심각하다는 건 눈치채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커크가 낮게 신음했다. 

“젬과 만났던 날을 기억하십니까?” 

“흠, 잊을 수 없지.”

그의 충실한 선의가 무려 함장과 일등 항해사에게 약물을 투여하고 고통으로 뛰어든 날이다. 맥코이는 돌아와서 규격에 딱 맞춘 사유서를 제출했다. 커크는 그것을 읽고, 개인 로그에 기록해두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진 않았지만 나의 선의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덧붙인 기록이었다.  

“그 날 닥터 맥코이와 저는 절대 동의할 수 없는 의견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언어로 말하자면 짐, 다퉜습니다. 그의 마음은 나의 언사로 상처 입었고, 나 또한 그의 언사로부터 모욕을 당했습니다.” 

“이런, 스팍. 내게 그토록 자세히 알릴 필요 없네."

기록 생각을 하느라 잠깐 놓친 스팍의 말이 구체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커크가 재빨리 그를 진정시켰다. 친구들의 '긴밀한 관계'를 아는 것에만 그치고 싶었다. 두 사람 다 나에게는 꼭 필요하고 중요한 재원이네. 커크는 둘 중 누구에게도 무게추를 맞추고 싶지 않았다. 

"하여간에 심하게 다퉜다는 말이군. 지금은 냉전시기이고 말이야.” 

냉전시기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총과 칼이 없으며 상반된 이념을 서로에게 주입시키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스팍은 속으로 생각했지만 직전 커크의 말이 있었기에 그저 귀를 기울였다.  

“나의 일은 함선이 잘 운행되게 만드는 것이야. 내부도 마찬가지니 곧 그 말은 나의 선원들도 잘 보살펴야 한단 말일세. 그러니 주제넘게 한 마디 하지. 스팍, 자네도 알다시피 본즈는 여느 인간과 같아. 나처럼, 체콥처럼, 또 다른 인간들처럼. 심지어 자네조차도 약점이 있지않나? 누구나 함락되기 쉬운 성은 한 채씩 가지고 있는 법이라네." 

커크의 상체가 측면으로 굽었다. 스팍은 그의 얼굴과 마주했다. 교섭권을 쥔 사람처럼 커크의 눈이 확신으로 빛났다. 

"다만 그 성을 얼마나 지키고 싶어하는지는 각자 달라. 그곳에 왕을 둘 수도, 빨리 허물고 싶어하는 그저 잉여로운 공간에 불과할 수도 있지." 이런, 나도 그 의사양반처럼 비유를 하는군. 커크가 중얼거렸다. 

"요컨대 내 말은 우리가 그저 타인의 성을 무시하거나 반대할 수 없다는 점이야. 본즈는 확실하게도 그 성에 왕을 둔 게 분명한 것 같고 말이지. 그가 생각만큼 강하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 할걸세.” 오해는 말게. 커크가 덧붙였다.

그들은 점차 태양광에서 멀어졌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커크를 따라 꼿꼿한 자세로 움직이는 스팍의 표정이 특유의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닥터가 유약하다는 의견에 동의하기 힘듭니다, 캡틴." 

스팍이 말을 고르기 위해 잠깐 입을 다물었다. 커크는 그가 '짐'에서 '캡틴'으로 바꿔 호명했다는 것을 알았다. 어깨를 살짝 더 젖혔다.  

"만약 인간의 정체성으로 벌칸을 무력화시킬 단 한 사람이 함선에 존재한다면 그는 분명 닥터 맥코이일 것입니다.” 

진지하게 말하는 스팍의 얼굴에 커크는 그가 친우의 어떤 면을 확실히 알고 있는지 깨달았으나 콕 집어 말하진 않았다. 대신 어깨만 으쓱하곤 평소와 같은 웃음을 지었을 뿐이다.  

“뭐, 자네가 나보다 그를 더 잘 알지 않겠나.” 

내 함선에 벌칸은 자네뿐이란 말을 삼키면서. 

“…내가 이래도 금방 끝내지 않을 심산이지?” 

스팍은 침묵했다. 혼자서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자네도 이번엔 봐주지 않을 거고 말이야.” 

잘 해결해보게. 스팍의 상체가 밀릴 정도로 등허리를 두드린 커크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스팍은 뒤따르지 않았다. 






*






그들은 사막뿐인 행성에 이르렀다. 생명의 태동을 관찰하는 임무였다. 모래바람이 끊임없이 불었기에 탐사조는 검은 천으로 몸을 감싸야만 했다. 눈만 내놓은 채 주변 환경을 트라이코더로 탐지하던 맥코이는 원형질의 핵을 발견하길 바랐다. 흙과 모래와 돌멩이는 그에게 큰 감상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같은 차림의 스팍이 곁을 스쳐지나간다. 두 사람의 관계는 여전했다. 그들이 우주를 벌리고 시간과 시간 사이에 끼워넣은 말들이 굳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아, 그곳에 틈이 생겼노라면. 멀리서 시작되는 모래 돌풍을 보며 커크가 외쳤다. "몸을 숙이도록 해!" 그들은 그렇게 했다. 등허리로 속도가 붙은 작은 물질들이 날아왔다. 공격을 당하는 것 같았다. 맥코이는 문득 이 순간이 귀찮거나 위험하게 느껴지지 않고 서럽다고 생각되었다. 

모래 폭풍이 지난 다음 운좋게도 행성의 모래 속에서 미생물을 발견했다. 성과를 가지고 돌아왔다. 분주한 과학부 크루들을 보며 맥코이는 곧장 메디컬 베이로 향했다. 막 견본을 연구실 크루에게 넘겨준 스팍이 고개를 돌렸을 때, 맥코이의 둥근 어깨가 코너를 돌아 가시영역에서 사라졌다. 스팍은 이 순간이 몹시 느리다고 생각했다. 










CHAPTER 2





함장과 푯대를 잃은 그들은 어디로 향하는가? 일등 항해사는 책임을 지고 함선의 뱃머리에 올라선다. 선의는 등을 돌려 함선의 모든 이를 보호한다. 서로의 머리를 맞대고 등만 마주하면 충분히 가능한 ―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하나가 아니요, 갈라진 틈으로 첨예한 숨이 드나들었다. 생채기가 났다. 친구를 잃은 일등 항해사는 그를 구하기 위해 무리한 시도를 자행했다. 태양을 잃은 선의는 남아있는 자들의 안전을 우선시하고자 했다. 저마다 불길을 내뿜었다. 불로도 여물지 않는 틈이었다. 슬픔과 분노가 한데 소용돌이 친 시간이 지나가고 함장을 되찾았을 때 그들은 비로소 안정을 찾았다. 


직전의 소동이 모두 물러간 메디컬 베이는 한산했다. 불과 다섯 시간 전 '캡틴(의 유령)을 보았다'며 이제는 부정된 환각증세를 나타내는 환자가 이 곳을 가득 메웠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모든 상황, 아니 일등 항해사와 선의를 통해 여과된 상황을 전해들은 함장은 기록용 코더로 짧은 로그를 남겼다. 나머지는 뒤로 미룰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업무시간은 끝났지 않나?”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우주에서 한정적인 조건으로 오랜 시간 머물렀던 제임스 T. 커크는 선의의 명령 하에 의무실에 머물러야만 했다. 간략한 검진 후 신경 완화제를 처방받았다. 그 외에도 다음 시프트까지 안정을 취하라는 권고가 있었다. 커크의 어깨가 으쓱한다. 불쑥 닥터 맥코이의 얼굴이 나타났다. 

“맞네. 쿼터 가기 전에 잠깐 확인하러. 마음이 놓여야 말이지.” 

애정이 가득한 그의 시선이 빠르게 커크의 안색을 살폈다. 

“본즈. 다시 말하지만 난 괜찮아.”

곁으로 다가온 맥코이를 따라 커크의 턱이 들렸다. 맥코이의 눈 밑에 불가역적인 피로가 앉는 것을 목격했으나 커크는 맥코이와 오랜 시간을 보냈다. 침묵해야 할 때를 알았다.  

“아직 확인할 목록이 많아. 공간물리검사도 다시 봐야하고, …무엇보다 자네도 모르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여기는 많이 받았을 걸세." 맥코이가 자신의 관자놀을 톡톡 두들기고는 이어 말했다. "야간에 나타나는 증상이 있어. 내 크루들이 잘 봐 줄 거야.” 

“메디컬 치프의 명령을 누가 어길 수 있겠나?” 

양 팔을 들어보인 커크의 눈꼬리가 항복하듯 아래로 향했다. 그의 웃음이 '너무 과장되었나?' 되묻더니 천천히 입가를 떠난다. 친구의 익살에 맥코이의 눈썹이 까딱였다. 그것은 안정의 표시였다. 모든 것이 다시 돌아왔다는, 세계를 돌려놓은 사람의 표정. 커크는 찰나를 다 지켜볼 수 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 고생이 심했던 모양이로군.” 

이제는 무게를 덜 수 있었기에 굳이 입 밖으로 내놓는다. 그의 화술은 매력적인데다 매너 또한 좋아서 쉬이 공격받아 본 역사가 적었다. 상대가 닥터 맥코이라면 더더욱. 

“흥, 말이라고 하나.” 

투정과 달리 팔짱을 낀 그의 모습이 교훈하고자 하는 선생과 닮아있다. 그러나 닥터 맥코이는 훈수를 둘 말이 없었다. 커크는 캡틴으로서 프로토콜을 따랐다. 그들이 모든 것을 올바르게 시행하더라도 언제든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이 그들의 일이었다. 맥코이는 그것이 빛조차 없는 우주의 최악인 점이라고 설파했으나 빛나는 탐사대원의 영혼으로 가득 찬 엔터프라이즈에서 그의 말에 귀 기울여 줄 사람은 없었다. 캡틴은 잃을 수 없는 것이어야 하는데. 그것은 시간처럼 세상을 구성하는 개념이 되었어야 했다. 문득 떠오른 어린아이와도 같은 생각에 충성의 말머리가 어디를 향해 있는지 잠깐 생각한다. 그러나 결렬. 커크의 마른 입가를 본다. 신경 완화제가 그의 세포에 돌았을 터다. 맥코이는 슬몃 답답함을 느꼈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대신 친우의 정강이를 다독였다. 단박에 이것이 위로가 아님을 알아챈 커크의 시선이 질문했다. 맥코이는 답하지 않고 상체를 슬쩍 돌려 바깥의 동향을 살폈다.  

“?”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상비 약품이 있는 수납실로 향한다. 프로그램으로 열리는 전자동 문 소리가 아니라 달칵이는 구식 수납장 소리가 난다. 커크는 몇 번의 경험으로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었다. 기대에 부합하듯 브랜디병을 쥔 맥코이가 나타난다. 커크의 표정이 밝아졌다.  

“자네에게 가장 좋은 약을 알고있지.” 

다소 장난스럽게 웃던 맥코이가 작은 잔―일회 복용량에 준하는 액체형 약물을 계량할 때 쓰는 도구였다―을 채워 커크에게 건네고는, 같은 잔에 자신의 몫 역시 채웠다.   

“그래도 자네와 스팍이 '특별히' 보고할 거리조차 없이 함선을 잘 관리했다니 뿌듯한 걸.” 

'특별히'에 강세를 준 커크가 눈치를 살폈으나 닥터 맥코이는 힘을 빼고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이전에 함선을 운행했던 누구한테 잘 배운 모양이지.” 

“아! 살아돌아왔더니 서비스가 좋군. 자만해도 되는건가?”

“…그래, 짐. 자네를 위한 단상이라네. 누구 말처럼 위기 앞에 우리는 하나의 이름만 가졌거든." 

언젠가의 그를 인용하는 맥코이에 친구를 띄워보는 일을 관둔 커크가 잔을 슬쩍 들었다. 그의 말 속에 모든 것이 있었다. 혼돈과 피로, 인내와 용기 그리고.  

"희망을 위해." 

엔터프라이즈 첫 항해 연설문의 마지막이었다. 젊은 지휘자가 단상 위에서 자신만만한 웃음을 띠었다. 그를 보는 모든 이들이 그와 같은 고취감을 느꼈다. 단전에서 불꽃이 이는 것 같았다. '우리는 위기 앞에 하나의 이름만을 가집니다. 바로 희망이죠.' 

"희망을 위해." 

나란히 잔을 들어올린 맥코이가 술에 입을 대기도 전 자신의 잔을 비운 커크의 눈이 맑았다. 

"이런, 맛이 정말 좋은데." 


몇 분 뒤 맥코이는 멀쩡한 얼굴로 병상을 나왔다. 

"제가 들어가있겠습니다." 

함장 옆에 밤새 대기하라는 명령이 있었다. 수행하겠노라 캡틴을 되찾은 의료 스태프는 의욕을 보였다. 그의 어깨를 짚어 도닥이던 맥코이가 해사하게 웃었다. 

"야간 발작은 없을거야. 아주 강력한 진정제를 처방했거든. 기본 상태만 체크하도록 하게. 자네도 좀 쉬고." 

어깨를 툭툭치고 나가는 맥코이의 뒷모습을 따르던 시선이 병상 안쪽을 슬쩍 확인한다. 방금전까지 말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 함장이 기절한 듯 대 자로 뻗어있다. 이런. 보스가 극약처방을 내리셨군. 긴장을 조금 내려놓았다. 




꿈도 꾸지 않는 단잠에 빠진 커크를 뒤로 두고 마침내 맥코이는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이지 고된 하루였어. 한산한 복도를 걷는 순간에야 피로에 찌든 표정을 숨기지 않은 맥코이가 성큼성큼 움직이던 걸음을 멈췄다. 본인의 쿼터 앞에 서 있는 익숙한 인영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잠깐 멈칫했으나 금세 표정을 고쳤다. 스팍이 문 앞에 있었다.  

"스팍." 

"닥터 맥코이." 

스팍은 예의를 지켰다. 한창 서로의 쿼터를 드나들 때는 허가없이도 마음껏 개인의 공간을 침범하곤 했었다. 자연스럽게 완성한 문장이 과거형이다. 맥코이의 독기가 가라앉았다. 

"미리 말을 하지 그랬나. 얼마나 기다릴 줄 알고." 

"얼마 안되었습니다." 머뭇거리던 스팍이 이어 말했다. "...업무 시간과 닥터께서 함장님께 처방할 논리적인 '치료'를 견주었을 때 이 시간쯤이면 끝났을 거라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 우리는 아직 할 얘기가 남았지. 들어오게." 

두 사람이 함께 맥코이의 쿼터로 들어섰다. 실로 오랜만이었다. 손에서 떼어놓을 줄 모르는 긴급키트를 데스크 위에 올려둔 맥코이가 돌아섰다. 스팍은 쿼터 문과 가까이에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지난번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조심스레 말을 고르는데, 이번에는 스팍이 망설이지 않았다. 

"나는 나의 잘못을 사과하고자 합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당신에게 정신적, 신체적 위협을 가해서는 안됐습니다. 또한 경중없는 나의 발언은 충분히 당신의 의문을 제기받아 마땅했습니다." 

눈썹을 비죽 올린다. 오늘 있었던 일에 관한 건 줄 알았더니. 입술이 아교처럼 달라붙는다. 다시 그 날이 떠올라 입 안이 쩍쩍 갈라지는 기분이다. 스팍에겐 '뛰어넘고' '대충 그렇게 해' '그렇게 쳐버리자고.' 따위의 낙관이 통하지 않았다. 그는 웬만해선 무엇이든 확실하길 원했고 아주 작은 조각도 자리에 맞춰 끼워넣길 바랐다. 맥코이는 알고 있었다. 

"끝났나?" 

"죄송합니다." 

동시에 튀어나온 말이 섞였다. 두 사람 모두 잠시간 침묵했다. 스팍은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들을 얘기가 있었기에 기다리는 얼굴로 맥코이를 쳐다보았다. 맥코이가 쭈뼛거렸다. 그냥 '사과 잘 받았네' 할 수 있는 노릇은 아니지 않는가! 무릇 오리발을 내미는 아집과 달리 그의 지성은 알고 있었다. 그 날 자신의 잘못 또한 간과할 수 없었음을. 맥코이가 한참 머뭇거리자 인내 앞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스팍이 뻔뻔하게 말했다. 먼저 들이닥친 자의 여유였다.  

"감정적인 이유에서 여전히 대화를 이어가기 어렵다고 느낀다면 나와 같은 방식을 사용할 것을 요청합니다. 저는 형식에 신경쓰지 않습니다." 

스팍이 말하는 '같은 방식'이란 '벌칸식'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벌칸식은 무엇인가. 방금 스팍이 한 것처럼 사실에 입각한 잘못을 나열한 후, 사과를 하는 (모든 사과는 마땅히 그래야 했다 ― 하지만 다소 딱딱하다는 감상을 지울 순 없었다)일종의 '감정제약 사과전달방법'이다. 스팍의 말은 효과를 보였다. 가만히 듣고 있던 맥코이가 펄쩍 뛰었다.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거야. 그런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도 나는 잘 말 할 수 있다네! 나 역시 사과하겠네. 그 날 그렇게 말해선 안됐어."

스팍은 진전을 느꼈다.  

"...엄밀히 말하자면 닥터께서 하신 말씀은 모두 사실에 입각한 진실이었습니다." 

"맞아. 아니! 내 말은 '그런 식'으로 얘기해선 안됐단 말이야. 자네에게, 어," 분주하게 손을 움직이던 맥코이가 한쪽 눈을 찡그리며 급히 말을 골랐다. "상처를 주면 안됐었다고." 

"..." 

"미안하네." 

"...사과를 받아들입니다."

"..." 

맥코이는 어깨가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으나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 그 날의 일은 일단락이 된건가? 그는 확신하지 못했다. 그리고 확신하지 못한 이성이 말했다. 그의 사과는 충분하지 않았노라고! 하지만 우리는, 자네와 나는? 슬쩍 눈치를 보았다. 불행히도 스팍은 용건이 끝나지 않은 듯 했다. 

"..." 

"...왜 그렇게 보나?" 

"닥터께선 아직 제 사과에 대한 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그것마저 형식에 따르란 말인가?" 

긴장이 풀린 맥코이의 언성이 높아졌다.

"원치 않는다면,"

스팍은 아까와 같은 전략을 꺼내들었다.  

"...나도 자네의 사과를 받아들였네!" 

백전백승이다. 

"...다행입니다." 

맥코이는 저 번역투의 구문이 벌칸의 언어로 '좋습니다'에 가깝게 치환된다는 것을 알았다. 분위기가 다소 부드러워지자 이번엔 부끄러움이 몰아닥친다. 괜히 테이블 끝을 툭툭 치고야 마는데 아직 이들에겐 안건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오늘 일을 떠올리기도 전에 스팍이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뭔가?" 

"오늘과 같은 일이 또 다시 발생한다면," 

"..." 

"저는 똑같은 결정을 내릴 것입니다." 

"이런, 스팍! 자네에겐 오차정정이라는 것도 없나?" 

순간 짜증이 인 맥코이가 꽥 소리를 질렀다. 그의 호령에 스팍이 입을 다물었다. 침묵 속에서 본인의 성급함을 깨달은 맥코이가 겸연쩍은 얼굴로 손바닥 휘저었다. 계속해보란 의미였다.  

"...저는 해당 상황에서 펼칠 수 있는 최적의 논리로 대응할 것입니다. 그게 저의 방법이니까요. 다만 닥터 맥코이, 오늘처럼 당신의 말을 무시하는 일은 없으리라 확언합니다." 

이것은 스팍에게도 아픈 결론이다. 맥코이는 그의 표정을 살핀다. 고찰에 의한 오류 수정은 지성의 영역이지만 짧은 시간 내 습득하고 입으로 고하는 일은 감정에 해를 입힌다. 스팍은 늘 '느끼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지만 그와 가깝게 교류하는 모든 이들이 알았다. 벌칸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저 극도로 절제한다는 것을. 맥코이가 침묵하자 스팍이 말을 이었다. 

"나의 오차정정범위는 당신을 기준으로 할 때 최적의 결과를 낸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것 참 듣던 중 반가운 논리로군." 

"그러니 앞으로 이와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 

"오늘처럼 해주십시오."

"..." 

"나는 당신의 의견을 충분히 참조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스팍."

맥코이는 스팍이 더 이상 자신을 몰아 붙이지 못하도록 막아섰다. 그의 목소리가 많이 낮아져있었다. 이것이 스팍의 '벌칸식을 제외한' 사과라는 것을 깨달았다. 살갗을 도려내 확인하고, 또 확인받는다. 감정을 떠나 본인에게 지독한 처사였다. 

"..." 

"오늘처럼 자네를 구석으로 몬다면 그건 나의 오점이야. 나에게도 오차정정이란 게 있다네. 오늘보다는 나을거라 확언하지. 자네의 방식대로. ..맞나?" 

"...맞습니다." 

둘은 절대 하나가 될 수 없었다. 각자의 거리에서 서로에 맞게 조정하는 것이 그들의 최선이었다. 맥코이는 스팍을 살폈다. 그의 갈색 눈이 맥코이를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문득 사방이 사막이던 행성에 머물렀던 일이 떠오른다. 휘날리는 모래 알갱이들. 육체가 둘이기에 고통은 각자의 몫이다. 맥코이는 부족함을 느낀다. 정제되지 않은 감정이었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랬기에 그의 연인은, 그의 영리한 연인은 유효한 제안을 하나 내놓는다. 

"마지막으로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전라의 두 사람이 침대 위에 누웠다. 어떤 접촉도 없었기에 기온과 맞닿은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성애의 감각이 제거된다. 약간은 어색했다. 스팍의 요청은 이러했다. "당신의 피부와 맞닿고 싶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표현에 눈썹을 까딱했던 맥코이는 그 문장이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 금방 깨달았다. 가깝다고 느끼지만 사실상 우리는 함께 있을 때조차 아주 멀다. 별들의 거리만큼. 우리 사이에는 대기가, 먼지가,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는 수 억 개의 미생물체가, 당신의 옷이, 나의 옷이, 당신의 눈으로 본 세계가, 나의 눈으로 본 세계가, 당신의 감각과 지성으로 만든 생각이, 나의 감각과 지성으로 만든 생각이 절대 사라지지 않고 우리 사이에 꽉 차있으니까. 너와 나는 생각만큼 가까워질 수 없노라고. 몇 주는 이렇게 보지 않았던 얼굴이다. 만지지 않았던 육체다. 맥코이가 먼저 팔을 벌렸다. 스팍이 겨드랑이 안으로 파고 들었다. 허락한 만큼의 피부가 맞닿았다. 

"그렇게 안으면 약 48초 뒤 팔이 저리게 됩니다." 

"괜찮아, 잠깐이면."

스팍의 어깨 밑에 손을 집어 넣어 품으로 끌어당긴 맥코이가 그의 심장이 위치한 피부 위를 정확하게 덮었다. 서늘한 온도 아래로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이 손바닥을 통해 여과없이 느껴졌다. 서로의 목덜미에 코를 뭍는다. 이질적인 살내음. 눈을 감아본다. 같은 피부를 지닌 것처럼 느껴진다. 하나의 심장박동인 양 착각한다. 나의 피가 너의 몸에서 순환하는 것만 같다. 착각하기 위해 만들어 낸 시간이다. 스팍의 손이 뜨거운 등을 훑었다. 맥코이는 절박하게 현재를 잡았다. 이것이 허락된 정도라면 견딜 수 있었다. 정확히 48초 뒤 팔이 저려왔다.









CHAPTER 3






둘만 남았다. 산지가 대부분인 행성이었다. 위기에 봉착했고 늘 그렇듯 최선의 경로를 따졌다. 맥코이와 스팍은 호수 위에 떠 있었다. 트라이코더가 고장나고 엔터프라이즈와 연결이 끊긴 건 산중턱에서였다. 해가 지기 전에 물가를 찾았다. 그들은 서바이벌 훈련을 필수적으로 받은 대원이었다. "제기랄, 난 의사야. 자연탐험대가 아니라고." 짧은 정복 때문에 애먼 나뭇가지의 공격을 받은 지 세 번만에 맥코이가 툴툴거렸다. 그렇다면 병원에 머물렀어야 하는 게 아닌가, 아니 그 전에 저 발언에 의의를 둘 가치가 있나 스팍은 언급하고자 했으나 침묵을 지켰다.

항성에서 먼 곳이었다. 반사할 빛이 없다. 대기는 맑았지만 별 하나 반짝이지 않는 하늘이다. 하늘을 담은 호수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사위가 캄캄했다. 지척에 있었지만 눈을 가늘게 뜨지 않고서야 어떤 자세로 앉아있는지조차 확인이 불가했다.

"짐이 늦는군."

그들은 정해진 좌표에 붙어 있어야만 했다. 스팍은 트라이코더를 고쳐보고자 노력했다. 아무런 지령이 없었다면 무엇이라도 시도했을텐데. '좌표를 엄수하라'는 명령을 받은 순간부터 할 일이 사라져버렸다. 맥코이는 부유물―스팍은 개념상 '배'라고 불러야 한다 주장했으나 맥코이가 거부했다. 과거에 낚시를 하러 가본 적이 있다며 이것은 배가 아니라고 그의 심술궂은 입술이 못 박았다.― 끄트머리에 기대어 까마득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밖 궤도 어딘가에서 엔터프라이즈가 때를 보고 있을 것이다. 목을 움츠리면 대기에 먹히지 않은 산등성이들이 보였다. 그들에게 익숙하도록 정제되지 않은 자연이 주는 위압감이란 게 있었다. 괜히 소름이 돋았다.

"작동하지 않습니다."

같은 의미를 지닌 말을 각 각 다른 구문으로 세번째 전달하고나서야 스팍은 트라이코더를 내려놓았다. '그걸 고치는 것보다 분해해서 새 커뮤니케이터를 만드는 게 더 빠를걸세.' 스팍의 노력을 비꼬았던 맥코이는 대답하는 대신 '음.'하고 목을 울려 소리를 냈을 뿐이다. 스팍의 손이 비었다. 대신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스팍은 이곳에 남겨진 인물이 본인과 맥코이가 아니었을 경우를 산정해본다. 그들은 명령이 무엇이든 현재 상태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실패의 확률은 따지지 않았다)을 취한 다음 넝마가 되어 돌아갈 방법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커크는 매사에 다양한 조건을 조합해 상황을 타개하고자 하는, 짐승에 가까운 감각을 지닌 함장이었다. 또 다른 조합. 이곳에 스팍 자신이 아닌 커크와 맥코이가 있을 시. 그럼에도 커크가 존재하기에 이 '커크설'은 힘을 잃지 않는다. 스팍은 문득 이상함을 느낀다. 특정 상황에서 현실과 다른 가설을 세워 대체자의 개념을 만들어낸다? 굉장히 소모적인 발상이었다. 혼란에 빠진 스팍이 맥코이를 쳐다본다. 맥코이의 얼굴이 하늘을 향해 있었기에 몇 초간 그의 턱을 볼 시간을 벌었다. 만약 조건부 현실― 이 부유물에 최대과적치가 있었고 부유물이 호수 표면에 부유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한 사람의 무게를 덜어야 한다면 맥코이는 언쟁할 가치가 없다는 표정으로 이 배를 떠날 것이다. 스팍은 이전에 있어왔던 그의 결정들로 다음 상황에 따른 맥코이의 결정을 유추할 수 있었으나 그의 문제란 이렇다. 맥코이가 언제 행동으로 옮길지, 실제의 그가 움직이기 전에는 알 지 못한다는 것이다. 스팍은 유리를 느꼈다.

요나다의 세계 ― 그곳에서 맥코이는 입술을 통해 복종과 신뢰를 말했다. 죽음 앞에 속하겠노라고. 스팍은 맥코이의 결정을 존중했다. 그에게는 충분히 선택할 권리가 있었다. 나티어라와의 관계가 성애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다. 스팍의 속은 그 지점에서 뒤틀렸다. 닥터 맥코이는 요새를 찾았다. 죽음 앞에서 가장 약해질 자신의 모습을 숨길 요새. 스팍은 통과하지 못한 관문이다. 아니 보여주지도 않은 관문이다. 어쩌면 그녀가 그들 중 가장 먼 사람이었기에 마땅히 그녀 곁에 남기로 결정했을지 모른다. 질투나 호승심이 아니라, 공백을 느꼈다. 피부를 닿는 것만으로 만족되지 않는 갈증이 그를 덮쳤다. 스팍은 고독을 느꼈다. 그의 피로 인한 세상으로부터의 필연적인 고독이 아니었다. 그는 닥터 맥코이로부터 고독을 느꼈다. 그런 순간이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도무지 말을 꺼내지 못할 거라는,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만드는 순간. 닥터 맥코이는 완벽하게 그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들은 여전히 대화를 나누고 손길을 나누었지만 스팍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공백은 본디 공백이 아니었다. 공백은 공백이기 전에 이미 채워져 있던 것이어야만 했다. 마침내 그는 수많은 문장 중 선택하여 다듬고 깎아내 몇 번이나 입술을 드나든 말을 내놓았다. 

"나는 당신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맥코이의 시야에서 하늘이 벗어난다. 사위가 어두웠기에 스팍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보지 못했다. '작동하지 않습니다.'와 '나는 당신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물을 만큼 맥코이의 얼굴은 두껍지 않았다. 맥코이는 몇 번이나 입술을 더 달싹인 다음, 무게를 덜어 말했다.

"그것은 가설인가?"

"아니오, 레너드. 나의 바람입니다."

바람. 벌칸의 언어로는 기술되지 않는 단어. 그들은 이성을 자랑스럽게 여긴 나머지 감정을 기록할 수단조차 제어하고 말았다. 맥코이는 스팍이 본인을 '레너드'로 호명한데서 이 사안이 몹시 개인적이라고 느낀다. 호수로부터 올라온 축축한 대기에도 목이 바짝 말랐다. 나는 당신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주어는 스팍이었으나 청자는 맥코이다. 맥코이는 스팍이 절박하게 뻗는 손길이 무서웠다. 아니, 절박하게 손을 뻗는 그의 마음을 감당할 수 있으리란 확신을 갖지 못했다. 침묵이 이어졌다. 스팍은 끈질기게 기다렸다. 맥코이는 어둠 속에서도 그의 진실된 갈색 눈이 본인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말들을 고른다. 모음과 자음을 빠르게 헤집고 할 말을 떠올린다. 문득 답답해진다. 이건 반칙이야. 업무 중에 이런 말을 찾게 만드는 것은.

[삐비빅]

스팍의 커뮤니케이터가 반응했다. '이런! 짐이야!' 다소 과장되게 소리지른 맥코이와 달리 스팍은 복지부동이었다. 맥코이는 그가 아주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팍의 커뮤니케이터가 다시 울렸다. 다급해진 맥코이가 스팍의 허리춤으로 손을 뻗었다. 커뮤니케이터를 잡아떼는 순간 손목이 잡혔다. 코 앞에서 눈이 마주쳤다. 맥코이의 손이 더 빨랐다. 삐빅. 커뮤니케이터의 수신기가 열렸다. 말하게. 맥코이의 눈이 채근했다. 스팍은 맥코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Spock, here."



구두점이 찍힌 질문을 유보하고도 관계는 이어질 수 있다. 맥코이와 스팍은 저마다의 언어로 이 순간을 괄호 속에 들어선 시간이라 명명한다. 두 사람은 맥코이의 쿼터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직 열기가 남아있었다. 손등으로 이마를 덮은 맥코이가 숨을 가다듬는다. 기척이 느껴졌다. 옆구리를 만지는 손에 자연히 시선이 내려간다. 엎드려 있었기에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스팍의 얼굴이 반쯤은 매트에 파묻힌 것 같았다. 쉽게 정수리를 쓰다듬었을 것을, 맥코이는 스팍의 머리만 보고도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상상할 수 있다. 아, 이런. 갑자기 억울한 기분이 든다. '당신에게 닿고 싶습니다.' 언젠가 했던 말은 힘을 잃었다. 스팍이 계속해서 맥코이의 피부를 쓰다듬었다. 성실한 노크였다.

맥코이의 문제다. 이미 결심했는데 왜 이리도 마음 먹기가 힘이 든가. 맥코이는 작금의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자신만만하게 인간의 방식으로도 충분하리라 호언했던 지난 날을 저주했다. 스팍의 바람을 가장한 질문이 가리키는 곳이 어딘지 알았다. 긴밀한 관계는 정말이지 긴밀했다. 감히 나의 많은 것을 내주고 또 받았노라 맥코이는 장담했었다. 선언은 세상의 말이라 세계가 뒤집히자 힘없이 추락했다. 연인의 앞에서 책임과 신뢰를 다할 것인가? 맥코이는 재빠르게 '그렇다'고 말했으나 그저 맥코이의 언어였기에 긍정이 쉬웠을 뿐이다. 괄호 사이가 넓어진다. 괄호가 더 이상 괄호의 기능을 하지 못할 정도가 되기 전에 맥코이는 결정해야 했다.

유한한 시간이 흘렀다. 


우선적으로 맥코이는 몸을 씻었다. 여유를 부리거나 취미생활이라며 스팍과의 공유를 절대 불허한 느긋한 샤워가 아니라 전장에 나가기 전 핏자국을 씻는 기사의 마음과 닮은 행위였다. 부차로 면도까지 말끔하게 마친 그는 연락없이 스팍의 쿼터로 걸음을 옮겼다. 아직 두려움이 가시지 않은 탓이다. 비겁한 짓임을 알았으나 주춤하는 마음을 숨기고 싶진 않았다. 맥코이는 굳이 버저를 눌렀다. 굳이 초대의 말을 들었다. 굳이 스팍의 영역에 발을 들였다. 스팍의 데스크 위에 정리되지 않은 패드와 펜이 보였으나 그것은 맥코이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스팍은 기민하게 맥코이의 상태를 알아챘다. 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비됐네."

스팍은 지체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침대에 가지런히 마주 앉았다. 그들은 '사적인 관계'를 시작한 뒤 단 한 번도 교감을 위한 마인드멜드를 해 본 적 없었다. 두 사람 중 누구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팍은 살아 돌아온 맥코이의 뒤통수를 보며 그들의 관계가 더 가까워지길 소원했다. 나는 나의 방식으로도 당신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스팍은 말했다. 나의 손이 당신의 손과 스치고, 나의 눈이 당신의 눈과 마주했던 것처럼. 그리고 요구했다. 더 이상 '당신의 피부와 닿고 싶습니다.'로는 감당할 수 없는 갈증을 느꼈다. 일전에 맥코이가 느낀 것과 같은 종류의 것이었다. 1년의 유예기간은 그들을 변하게 만들었다. 죽음의 길을 차분하게 닦아두고, 다시 돌아왔다. 다시 닥터 맥코이가 되었다. 맥코이에게 변화를 일으킨 이 커다란 일은 스팍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나는 조바심이 납니다. 이것은 나에 대한 마음이 아닙니다. 스팍은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두드렸다. 마침내 맥코이는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단 한 번의 대화로 이루어진 결정이 아니라 끝없이 마음을 주고받은 결과였다.

맥코이의 죽음 앞에 그들은 서로를 존중했지만 감정과 관계는 존중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돌아온 그들의 숨이 빠져나갔다. 균열이 생겼다. 셀로판지처럼 덧댄 얇은 막은 균열을 채울 수 없었다. 스팍의 요청이 있었고 본즈의 동의가 따랐다.

"내가 허락하지 않은 것들도 볼 수 있나?"

"이론적으로 마인드멜드를 허락하는 자체가 당신의 모든 생각과 기억을 공유할 수 있도록 초대하는 것입니다."

"……"

"……비유하자면, 나는 당신의 집에 초대되었으나 그게 나의 마음대로 집안 곳 곳을 볼 수 있다는 말은 아니지요."

"하지만 자네가 원하면 어느 방이든 들어갈 수 있군."

"맞습니다. 지금이라도 원하지 않으면 시도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 내일 또 요청할거고?"

"네."

"매 주기마다 하는 명상은 어디에 쓰나?"

"당신은 나의 명상 목록에 들어있지 않습니다."

맥코이의 눈썹이 비죽 올라가자 스팍이 느리게 덧붙였다.

"당신은 내가 잠재워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래 걸릴까?"

"확답할 수 없습니다."

죽음으로부터 돌아온 맥코이 역시 조바심을 냈다. 이 균열은 우리가 붙일 수 있는 게 아니야. 그 상태 그대로 굳어 층층이 쌓이는 대지 아래 흠으로 남겠지. 그저 흘러가도록 놔두지 못하는 건 아마 한 해의 목숨을 경험했기에. 맥코이는 두 사람의 유한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는 당신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바보같은 바람이야. 서글퍼지기 전에 허리를 곧추 세운다. 그는 여지껏 임무에 의한 것, 또는 스팍이 아니었던 이세계(異世界)의 스팍에 의한 강제적인 마인드멜드를 '당할 때'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에 눈을 부릅 떴었다. 지금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정확하게 안다. 맥코이가 눈을 감았다. 살짝 긴장한 손이 무릎 위에서 굽이쳤다. 얼굴의 특정 부위마다 차가운 온도를 지닌 스팍의 손 끝이 닿았다.

"...나의 마음은 당신의 마음. 당신의 마음은 나의 마음..."

맥코이는 육성으로 들은 마지막 음성이 거짓이라고 생각했다. 벌칸이라는 특정 종 사이에서만 가능한 말이다. 나의 마음은 당신의 마음일지 모르나 당신의 마음은 내 것이 아니다. 나는 볼 수 없다. 나는 초대하는 것에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는 이종(異種)이다. 순간 스팍의 장이 맥코이의 정신을 흐트렸다. 나의 마음은 칠흑같이 어두우나 우리는 함께 당신의 의식을 부유할 수 있습니다. 나는 당신과 동행하길 원합니다. 닥터. 당신은 마인드멜드를 위한 명상수련을 한 적 없으므로, 이 과정이 쉬우리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함께 하시겠습니까?'는 생략된다. 맥코이는 자신의 의식이 허락하는 한 기꺼이 동행하고자 결심했다. 아마 결심의 순간을 따져본다면 스팍보다 더 먼저였을거라고 으스댈 수도 있었다.



맥코이의 의식은 차원의 공간이 아니라서 비죽비죽 나타났다가 모서리 끝으로 사라지곤 했다. 그의 의식이 기억하는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쉽게 길을 잃었다. 잔디를 뛰다가 넘어진 순간이 아팠다. 학교에서 만난 친구와 헤어지기 싫었다. 스팍이 길잡이를 맡았다. 의식 속을 끝없이 돌아다녔다. 맥코이의 기억과 감정과 경험을, 스팍은 흡수했다. 거부당할 때도 있었다. 특정한 장소. 괴로운 마음이 넘실대는 곳. 아냐, 이곳은 싫어. 회상하기에 나는 이제 지쳤어. 스쳐지나가는 벼린 삶의 단면들. 끔찍한 공허와 분노, 상실감. 스팍은 맥코이가 허락하지 않는 곳은 노크하지 않았다. 돌아서는 순간은 경험과 기억을 보지 못하고 새어나온 감정을 맡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했다. 맥코이가 허락한 모든 것은 볼 수 있으니까. 스팍은 그와 의식이 뒤섞임에 따라 방관자에서 당사자가 되기도 한다. 삶은 슬프기만 했던가? 아니오. 기쁨. 환희. 열망의 발자취들. 그렇다면 스팍, 이제 자네는 난가? 자네는 내 삶의 모든 순간을 함께 했네. 나는 혼란스러워. 모든 순간에 자네가 있었던 것처럼 느껴져. 아니오, 닥터. 나는 그저 당신의 의식을 지나쳤을 뿐입니다. 이 행위가 끝나고도 계속 그렇게 느껴지면 어떡하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마음은 당신의 것.

맥코이가 눈을 떴다. 물 밑에 머물렀던 것 마냥 호흡이 급했다. "자네와 내가 방금 무엇을 한거지?" 중얼거리는 맥코이의 상체가 휘청였다. 마주한 눈이 한없이 깊게 느껴졌다. 오랫동안 말하지 않아 갈라진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대체 방금은 뭐였나?" 

"정신감응입니다." 

아니야. 아니었어. 내가 아는 마인드멜드는 이런 게 아니었어. 맥코이가 의식 속으로 소리쳤다. 

"나는 자네한테.. 화가 나." 

스팍이 맥코이의 상체를 잡아 지탱했다. 맥코이는 당혹스러웠다. 이상하다는 말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아니, 이 기분을 위한 단어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어. 존재하는 것과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내가 아는 모든 사어를 돌아봐도 지금에 맞는 표현이 없어. 그리고 나는, 나는. 단숨에 속이 홧홧해진 그의 눈시울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짧은 시간동안 많은 감정을 복기해서 그렇습니다. 닥터. 당신은 삶의 중요한 순간을 동시에 겪은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태입니다. 후유증이니 안심하십시오. 당신의 불편함은 곧 사라질 것입니다." 

차분하게 말하는 스팍의 손아귀를 벗어난다. 맥코이의 몸이 들썩였다. 무릎으로 서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모르는 사람처럼, 얼굴이 순간마다 바뀌었다. 당혹감에서 답답함으로. 답답함에서 두려움으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맥코이는 흥분상태를 주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훈련받은 탐사대원이다. 천천히 호흡을 조절한다. 현실정립이 필요하다고 익히 교육받은 정신이 말한다. 전후상황을 확인하시오. 빛의 방향조차 세심하게 보시오. 단절이 있었습니까? 뺨에 닿는 바람이 직전보다 무겁게 느껴집니까? 아주 작은 실마리도 좋습니다. 우리의 정신은 공격받기 쉽습니다. 

맥코이의 경계태세가 빨간불로 치닫는 동안 스팍은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그를 관찰했다. 그의 첫 눈물을. 맥코이는 엔터프라이즈에 승선한 이후 단 한 번도 눈물을 흘린 적이 없다. 적어도 스팍이 아는 바로는 그러했다. 스팍은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는 행위'에 대해 감탄한다. 맥코이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였기에 만들어 낸 경이로운 삶의 궤적이다. 과거에 그가 만든 궤적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아름다운 경로를 우주에 그려 넣는다. 삶의 연속성이 덧대어진다. 토성의 고리만큼이나 황홀하다. 홀린 듯 맥코이의 손을 잡으려던 스팍이 그 행동은 어딘가 성급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대신 반팔 아래로 드러난 팔꿈치를 느슨하게 쥐었다. 

"닥터." 

스팍은 마인드멜드를 하는 동안에도 맥코이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닥터 또는 닥터 맥코이로만 호명했다. 아주 긴밀하고 사적인 경험이지만 훈련되지 않은 이에겐 까다로운 탐사와 같았다. 긴장하지 않으면 해낼 수 없는 모험이었다. 스팍은 맥코이가 끝까지 잘 버티길 바랐다. 

되려 긴장이 풀린 스팍의 혀가 쉬운 말을 찾았다. 빠르게 입을 다문다. 괜찮으십니까? 묻는 것은 스타플릿에서 수학하고 인간들과 교류하며 얻은 인용구나 마찬가지였다. 왜 그들은 명백히 괜찮아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만 '괜찮냐'고 물어보는 걸까. 닥터 맥코이는 괜찮지 않다. 스팍은 입에 익은 질문 대신 천천히 말한다. 

"제가 도울 일이 있습니까?" 

하얗게 질린 얼굴이 스팍과 마주한다. 땀처럼 눈물이 흘렀다. 맥코이는 눈조차 깜박이지 않았다. 눈물은 맥코이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저 중력의 힘을 받아 뚝뚝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스팍의 질문은 효과적이었다. 맥코이의 흥분이 점차 가라앉았다. 스팍이 도울 수 있는 일은 없으며 이것은 맥코이 본인의 혼란이다. 잠시간 진정하는가 싶던 맥코이가 이번에는 방백하듯 소리를 질렀다. 

"나는 이방인이야." 

스팍은 침묵했다. 

"자네도 나에겐 이방인이야." 

"우리는 모두 타인입니다, 닥터."

스팍은 이 이방인이란 단어가 주는 거리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집을 부리듯 슬쩍 말을 바꿨다. 

"자네들은 늘 이러한 과정을 겪나?" 

맥코이에겐 상관없어 보였다.

"우리는 훈련받았습니다. 감정의 기복도 넓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서로의 삶에 증인이 됩니다. 우리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으나 늘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나의 입술이 노래하는 동안 나의 정신은 입 맞출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가 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어느덧 눈물이 멈췄다. 맥코이가 입을 벙긋거렸다. 뺨 끝에 눈물이 매달렸다. 이번에는 손을 뻗어 훔쳤다. 맥코이는 그제야 본인이 울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건 벌이야. 만약 신이 있다면. 오, 아니 이건 완벽하게 비논리적이야. 절망이 섞인 맥코이의 의식이 말한다. 스팍의 '우리'에 맥코이의 이름은 등재될 수 없다. 스팍의 세계에서 그는 이방인이다. 늘 너와 나는 다르지 않다며 소리치던 맥코이가 스팍의 세계에 표면을 살짝 스친 순간 가장 먼저 느낀 감상이었다. 

"이 행위가 결코 당신에게 편안하리라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벌거벗겨진 기분일세." 

"타인과 머릿속을 공유하는 건 그와 비슷한 감상을 자아냅니다." 

"스팍." 

"당신은 아름답습니다." 

"내 어깨가 떨리고 있네." 

"오늘 하루는 휴식을 취할 것을 권고합니다. 불안정한 정신은 근무에 방해가 됩니다." 

"자네는 나의 모든 순간을 보았나? 내가 잊었던 어느 순간까지 모조리 다?" 

이제는 목이 메어 속삭이듯 작아진 목소리에도 스팍은 대답한다. 

"당신이 허락한 모든 순간을 보았습니다."

맥코이가 무릎을 접고 침대 위로 주저앉는다. 덕분에 같은 매트 위에 있던 스팍의 몸이 흔들렸다. 

"나는 쉬어야겠어." 

"제가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 

스팍만이 맥코이의 말을 들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하고싶은 말만을 건넸다. 맥코이가 입을 다물자 쿼터 역시 침묵했다. 스팍은 맥코이가 순간을 견디는 동안 끈질기게 마주 앉아 자리를 지켰다. 비로소 그와 내가 하나가 되었노라고 느꼈다. 딱 절반만큼의 인간과 절반만큼의 벌칸이 모두 만족한 순간이었다.